|
밀밭 |
국도 주변에 넓게 푸른밭으로 푸르디 푸른 오월의 밀밭 | 사마르칸드(Samarkand)는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로 고도(古都)로 분류된다. 타쉬켄트에서 남쪽으로 353킬로미터 떨어진 사마르칸드는 아미르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을 뿐 아니라 실크로드의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도시이다. 고대에는 '마라칸다'로 불리웠었고, 중국에서는 '강국(康國)'으로 알려진 사마르칸드는 '사마르의 도시'란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사마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사람들이 만나는 곳'을 의미한다. '칸드'는 페르시아어로 도시를 말한다. 즉, 사람들이 만나는 도시가 바로 사마르칸드이다. 여기서 'Kand'이지 '칸트'가 아님을 밝힌다. 발음상의 차이가 될 수 있으나 겪음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강하게 발음을 해서 간혹 '사마르칸트'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올바른 표기가 아니다. 한때 사마르칸드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首都)이기도 했다.
|
길 |
사마르칸드로 가는 국도 | "사마르칸드 지역은 둘레가 약 8백킬로미터에 이르고 남북보다 동서의 폭이 더 넓다. 중심가는 둘레가 10킬로쯤 되고, 울퉁불퉁한 땅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으며, 인구가 아주 많다. 외국 각지에서 들어온 값진 상품이 이곳에 집하되어 있다. 땅이 비옥해서 농작물이 많이 난다. 숲에는 나무가 울창하고, 꽃과 과일이 풍부하다. 여기서는 선마(善馬)라는 품종의 말을 사육한다. 기술과 교역에서 이곳 주민들은 어느 나라주민보다 뛰어나다. 기후는 온화해서 살기 좋고, 사람들은 용감하고 정력적이다." 7세기 중엽 사마르칸드를 둘러본 중국의 승려 현장이 "대당서역기"에서 묘사한 당대의 강국(康國) 마라칸드의 모습이다.
이슬람이 도래하기 전 사마르칸드는 '고대 동방의 에덴'이란
|
대상 |
사마르칸트를 찾아가는 대상행렬 | 별칭을 갖고 있을 만큼 사랑스런 도시였다. 그 옛날 '찬란한(빛나는)'이란 의미를 가진 페르시아어 '소그드'를 곁에 두고 있는 사마르칸드는 도시의 연원만큼이나 무수한 역사적 유물, 유적을 갖고 있어 우즈베키스탄 제1의 역사 관광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별도의 과학 아카데미가 설치되어 있어 우즈벡에서 가장 활발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찬란히 빛나는 나라 '소그디아나'는 조로아스터교를 신앙한 페르시아계 민족들의 나라였다. 그 나라의 수도가 바로 사마르칸드 지역인 마라칸드였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든 이슬람교든 그러한 유적 유물을 만들었던 주인공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 흔적 위에 새롭게 형성되어 있는 오늘날의 사마르칸드는 아미르 티무르가 만들고자 했던 '푸른도시'가 되어 지금도 살아있는 듯 이슬람 성원(모스크)이며 신학교(메드레세) 건축물에서 푸르고 푸른 에메랄드빛을 자아내고 있다.
|
우즈벡 |
사마르칸드의 멋쟁이 아가씨들 | 타쉬켄트에서 불과 서너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사마르칸드는 자랍샨 강을 끼고 있는 인구 40만 명 정도의 도시이다. 한때, 신라의 사절(使節)이니 고구려의 사절이니 하는 논의가 진행되게 했던 문제의 벽화가 발견된 아프라시앞 언덕은 사마르칸드 시가지 진입로에 위치해 있다. 비비하님 이슬람 성원을 향해 올라 가다보면 뒷편에 보이는 언덕이 바로 아프라시앞 언덕이다. 사마르칸드 국립 역사 박물관에 가면 조우관(鳥羽冠)을 쓴 두 명의 사신이 선명히 보이는 복원된 문제의 벽화를 볼 수 있다. 사마르칸드는 지리적 십자로에 위치한 관계로 우즈벡 민족 못지 않게 타직민족들과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 현재도 많은 수의 타직인들이 사마르칸드에 살고 있다. 이들은 투르크계인 우즈벡 민족들과는 달리 페르시아계 민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