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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냐 |
우즈벡의 별미인 멜론류 드냐 나만간에서 | 타쉬켄트에서 페르가나 계곡으로 들어가는 일은 골짜기를 돌고 돌아 새로운 땅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페르가나 계곡 속에 살아있는 문화적 토양은 분명 우즈베키스탄의 그 어느 농촌도시 풍경처럼 다름없는 것이지만, 계곡이라는 자연환경이 만들어내는 것은 마치 한 장의 아름다운 풍광이 되어 다가온다. 동서길이가 3백 킬로미터이고 남북길이가 백5십 킬로미터이면 하나의 독립국가가 되고도 남을 면적이다. 거기에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비옥한 땅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니 우즈베키스탄으로는 복을 잡아도 엄청난 복을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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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지에서 |
페르가나 계곡 하나바드의 여름 휴가 | 일반적으로 페르가나 계곡이라고 하면, 우즈베키스탄 영토만 속한 것이 아니라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영토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키르기즈스탄의 오쉬시(市), 타지키스탄의 레닌아바드시(市)가 바로 그것이다. 페르가나 계곡의 나만간주, 안디잔주, 페르가나주와 더불어 이들 두 도시는 페르가나 계곡을 구성하는 주요한 거점들이다. 1930년대 구소련 스탈린에 의해 획정된 이러한 영토구획은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민족적 경계를 표방한 것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획정되었기 때문에 여러 민족들이 잡거(雜居)내지 혼거(混居)하게 된 경위와 같다. 중앙아시아 공화국간 혹은 민족간 문제가 생기면 이러한 도시들은 가장 빨리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우즈베키스탄 내 민족문제, 민족충돌 등이 일어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화약고와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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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리 장수 |
우즈벡 동부 나만간주에서 촬영 | 구석기 시대에 이미 페르가나 지역에 사람이 살았음이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또한 페르가나 계곡은 일찍이 중국과 역사적 숙원(宿怨) 관계가 상당히 깊은 곳이다. 기원전 2세기 경에는 여러 차례 중국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중국측에서 서역(西域)이라고 말했을 때, 그 서역의 중심부에 속하는 곳이 바로 페르가나이다. 한때, 한(漢) 무제의 명을 받은 장건(張騫)이 거쳐간 곳으로 유명하고, 대당서역기를 쓴 현장스님이 지나간 길이기도 하다. 장건은 서역 탐방을 통해 한혈마(汗血馬)의 존재를 중국에 알려 한무제를 매료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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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마차 |
페르가나 계곡 안디잔주에서 촬영 | 북쪽의 크라민 산맥, 남쪽의 알라이 산맥 등 고산준봉에 둘러싸인 페르가나 계곡은 저 멀리 만년설이 날씨가 별로 좋지 않은 날에도 보일 만큼 천산산맥 속에 자리잡고 있다. 워낙 넓은 계곡이라 페르가나 계곡에 있으면 천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란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게 된다. 더구나 나만간주에서 '나린'강과 '카라다르야' 두 강이 만나 시르다르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을 본다면, 우즈베키스탄의 여느 평지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곳곳에 산재한 크고 작은 계곡의 강들을 따라 페르가나 계곡을 적시는 물은 이곳의 목화와 뽕나무를 한결 더욱 풍성하게 해 주고 있다. 페르가나 계곡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목화생산, 비단생산 제1의 농업 생산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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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
페르가나시 시외버스 정류장앞에서 | 페르가나 계곡은 우즈베키스탄 영토의 4.3%정도를 차지하지만, 전체인구는 26.9%를 차지하리만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영토에만 약 6백2십만 명이 살고 있다.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지역까지 합친 페르가나 계곡 전체의 인구는 무려 천만 명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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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선 |
우즈벡과 키르기즈를 가르는 안디잔주의 국경 철책선 |
페르가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페르가나를 '파르고나'라고 부른다. 파르고나는 우즈벡 현지인들이 지칭하는 것이고, 페르가나란 지명은 1920년대 '페어가나'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파르고나는 '파르칸'이란 지명에서 나왔다. '파르칸'이 페르가나의 옛 지명인 것이다. 중국측에는 '다완(大宛)'이라고 알려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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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
페르가나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손자 | 13세기 초반 징기스칸의 몽골군에 의해 파괴된 '아프시켄트'는 당대의 번영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적지이다. 한나라의 장건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벼농사와 밭농사가 행해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프시켄트 유적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특히, 석조 목욕탕, 하수도관, 포도주 저장고 등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적들은 당시의 사회적 번영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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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
안디잔 어느 시장에서 만난 멋쟁이 할아버지 |
페르가나 계곡은 서북쪽의 나만간주, 동북쪽의 안디잔주, 남쪽의 페르가나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나만간주에는 나만간시, 안디잔에는 안디잔시, 페르가나주에는 페르가나시(市), 마르길란시(市), 코칸드시(市) 등 전체적으로 70여 개의 도시와 마을이 있다. 특히, 코칸드는 19세기까지 코칸드 칸국이 자리잡고 있던 지역으로 중국과의 무역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페르가나 계곡 전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다. 중국 신강성 카쉬가르와 키르기즈스탄 오쉬시(市)를 연결하는 신(新)실크로드인 우즈베키스탄 373번 국도(國道)가 완성되면 그 옛날의 영화를 다시금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 설레어 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