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랩] 유래가 있는 고사성어(가~기)天 地 玄 黃 中 人 2009. 8. 1. 20:12
유래가 있는 고사성어
佳人薄命(가인박명) : 용모가 너무 빼어나면 운명이 기박하다.
<아름다운 가><사람 인><엷은 박><목숨 명>
☞ 소식(小食)은 그의 시 『박명가인(薄命佳人)』에서 자신이 항주(杭州), 양주(楊州) 등의 지방 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에서 본 어여쁜 젊은 여승(女僧)의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그녀의 아리따웠을 소녀 시절을 생각해 보니 미인의 운수가 기박한 것 같다고 읊은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뛰어난 용모와 재주를 지니고 있어서 능히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처지의 사람이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도 기구한 길을 걷게 되는 경우를 가리켜 말한다. 미인박명(美人薄命)도 같은 말이다.
刻舟求劍(각주구검) : 칼이 물에 빠지자 나중에 배가 움직일 것은 생각지도 <새길 각><배 주> 못하고 뱃전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해 두었다가 칼자국 <구할 구><칼 검> 을 기준으로 뱃전 부근에서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 로 시세의 흐름에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하고 있다.
☞ 초나라 사람이 칼을 껴안고 양자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옆의 사람들이 나누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정신을 팔다가 배가 강 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껴 안고 있던 칼을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앗, 큰일났다!”
사나이는 외치며 뱃전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칼은 이미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당황한 사나이는 주머니칼을 꺼내 떨어진 방향으로 뱃전에 자국을 내어 표시하 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칼이 여기에서 떨어졌거든. 하지만 표시를 해 놓았으니까 이제 안심이 야.”
잠시 후 배가 언덕에 닿았다. 사나이는 곧 표시해 놓은 뱃전에서 물 속으로 뛰어들어 칼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배는 사나이가 칼을 떨어뜨린 곳에서 멀리 이동해 왔으므로, 칼이 그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배에 표시를 해서 칼을 찾으려 한다(刻舟求劍).”며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肝膽相照(간담상조) : 간과 쓸개를 드러내 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 <간 간> <쓸개 담> 놓고 격의 없이 친하게 사귐을 일컫는 말이다.
<서로 상><비출 조>
☞ 궂은 일이 없을 때에는 그 사람의 신의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 서로 의 쓸개와 간을 꺼내 보일 정도로 터놓고 이야기하며 언제까지나 우의를 지키자 고 약속하지만 친구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모른척하는 사람이 많다. 한유(韓 愈)는 평생 맹교(孟郊)나 가도(賈島)와 같은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아마도 여러 번 직면했던 곤경 덕택에 참된 우정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익힌 결과일 것이다.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地銘)에서는 먼저 유종원(柳宗元)의 선조의 사적부터 설 명하고, 그 사람됨과 재능과 정치가로서의 업적을 칭찬하고 나중에는 그 우의가 두터움을 찬양하였다.
改過遷善(개과천선) : 지나간 허물을 뉘우치고 새롭게 착한 사람이 된다는 <고칠 개><허물 과> 뜻이다.
<옮길 천><착할 선>
☞ 주처(周處)의 아버지 주방(周紡)은 동오(東吳)와 파양(鄱陽)의 태수를 지냈으나 불행히도 주처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주처는 아버지의 가르침과 보살핌을 잃은 뒤부터 점점 외곬으로 빠져 하루 종일 하릴없이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지냈 다.
또 남달리 몸이 강인하고 힘도 보통 사람들은 대적하지 못할 정도여서 걸핏하 면 남을 두들겨 팼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주처가 철이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지난 허물을 과감히 고쳐 서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痛改前非 重新做人 통개전비 중신주인)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그리하여 어느 날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세상이 태평하여 모두들 의식주에 대한 걱정없이 사는데, 왜 여러분들 은 나만 보면 얼굴을 찡그리오?”
이 때 어느 대담한 마을 사람이 대답했다.
“세 가지 해로움도 제거하지 못했는데 어찌 태평을 논할 수 있겠나?”
“세 가지 해로움이라니요?” 주처는 이상히 여겨서 물었다. “남산에 있는 사 나운 호랑이, 장교(長橋)에 있는 교룡(蛟龍), 그리고 주처 자네를 합하여 세 가지 해로움이라 하는 걸세.”
주처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는 더욱 바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굳혔 다. 이때부터 주처는 뜻을 세우고 글을 배웠다. 그 후 십여 년간 덕과 학문을 닦고 익혀 마침내 유명한 대학자가 되었다.
乾坤一擲(건곤일척) : 하늘과 땅을 향해 한번에 내던진다는 뜻으로 천하를 <하늘 건> <땅 곤> 잃느냐 얻느냐, 또는 죽느냐 사느냐, 성공이냐 실패냐 <한 일> <던질 척> 등 사생 결단하는 최후의 한판 승부를 일컫는다.
☞ 진(秦)이 멸망한 뒤 천하가 통일되지 못하고 있을 때 초(楚)의 항우(項羽)와 한 (漢)의 유방(劉邦)이 이곳에 선을 긋고 천하를 나누어 가졌다. 이시는 당시를 추억한 것이다.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천원) 용은 피로하고 호랑이는 곤하여 천원을 나누니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 모든 백성들이 생명을 보존하였다.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 누군가가 왕에게 말머리를 돌리길 권하며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 진실로 천하를 건 한판의 도박을 벌였구나.
항우와 유방은 진의 타도를 위해 서로 협력하였으나 그 목적이 이루어지자 천 하의 패권을 놓고 서로 겨루게 되었다. 항우가 반란군을 토벌하고 있는 틈에 유방이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 땅을 병합해 버렸다.
結草報恩(결초보은) : 풀을 엮어서 은혜를 갚는다. 즉, 죽어서도 은혜를 <맺을 결> <풀 초> 잊지 않고 갚는다는 얘기다.
<갚을 보><은혜 은>
☞ 춘추시대 진(晉)나라에 위무자(魏武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첩이 있 었으나 그 사이에 자식은 두지 않았다. 그래서 위무자는 병이 들자 아들인 과 (顆)를 불러 말했다.
“반드시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도록 하여라.”
그러나 병이 악화되자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죽여서 함께 묻어 달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위과(魏顆)는 그녀를 다른곳으로 시집보내면서 말했다.
“병이 심해질 적에는 머리가 혼란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나는 병세가 악화되 기 전의 아버님 말씀에 따르는 것이다.”
그 후 선공(宣公) 15년에 진(秦)의 환공(桓公)이 전쟁을 일으켜 군대를 보씨(輔 氏)에 주둔시켰다. 이 보씨의 싸움에서 위과는 진(秦)의 이름난 장수 두회를 사 로잡았다. 한 노인이 두회의 발 앞에 있는 풀을 엮어 걸려 넘어지게 해서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위과의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그대가 시집보내 준 여자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그대가 선친의 바른 유언에 따랐기 때문에 내가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傾國之色(경국지색) : 한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미색이라는 뜻으로, <기울 경><나라 국>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이다.
<갈 지> <빛 색>
☞ 한무제(漢武帝)를 모시고 있는 이연년(李延年)이라는 자가 있었다. 음악적 재 능이 풍부하고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므로 무제의 총애를 받고 있 었다. 그는 황제 앞에서 춤을 추며 노래했다.
북방에 가인(佳人)이 있어
절세로 단 한 사람뿐
일고(一顧)하면 성(城)을 기울게 하고
재고(再顧)하면 나라를 기울게 했다.
어찌 경성(傾城) 경국(傾國)을 모르리요마는
가인은 두 번 다시 얻기 어려우니.
무제는 노래를 듣고 나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아. 세상에 그런 여인이 정말 있을까?”
무제의 누이인 평양공주(平陽公主)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연년에게는 누이동생이 있거든요.”
무제는 곧 연년의 누이동생을 불러들였다. 그녀는 더없이 예뻤고 춤도 능숙 했다. 무제는 곧 그녀에게 마음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여인에게 빠져서 나라가 망해도 모를 만큼 된다는 뜻이다.
鷄肋(계륵) : 닭의 갈비는 먹을 만한 살은 없지만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 <닭 계> 큰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사물을 이르는 말로서, 이러<갈비 륵> 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을 뜻한다.
☞ 조조(曹操)와 유비(劉備)가 한중(漢中)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게 되었 다. 유비는 익주(益州)를 근거지로 요소요소에 군사들을 배치하여 한중을 평정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조는 사전에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전투를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보급이 충분하지 못하여 유비의 군대를 공격할 수도 없었고 그대로 지 키고 있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조조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부하들은 명령을 내려달라고 조조에게 찾아왔 다. 이때 조조는 닭갈비를 뜯고 있다가 혼자 “계륵 계륵.” 하더니 아무말이 없 었다.
부하들은 아무도 조조의 말뜻을 몰랐다. 오직 양수(揚修)만이, “닭갈비는 먹 을 만한 것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결국 한중을 포기하기는 아깝지 만 그렇다고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철수를 결정하실 것이 다.”라고 조조의 생각을 미리 짐작하였다.
다음날 조조는 양수의 말대로 한중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러나 양수는 혼자 예견하고 짐을 꾸렸지만 조조에게 참수를 당하였다.
鷄鳴狗盜(계명구도) :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고 개의 흉내를 잘 내서 좀도둑<닭 계><울 명> 질을 잘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기술에 능한 비천한 사 <개 구><훔칠 도> 람을 말한다. 또는 천한 재주나 기능도 훌륭하게 쓰일 때가 있음을 말한다.
☞ 제(濟)나라의 재상 맹상군(孟嘗君)은 비록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남다른 재주 를 가진 사람이라면 식객(食客)으로 맞아들이니, 그 수가 3천명을 넘었다. 진 (秦)나라의 소왕(素王)은 맹상군의 명성을 듣고 그를 진나라로 초청하였다. 그 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 들어가자, 소왕은 그가 다시 제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 록 억류하였다. 맹상군은 소왕의 애첩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소왕의 애첩은 호백구(狐白裘)를 요구했다. 호백구는 여우의 겨드랑이 털로 만든 아주 귀한 털옷인데, 맹상군은 진나라에 들어올 때 이미 소왕에게 이 것을 바쳤기 때문에 다시 구할 수가 없었다.
이때, 맹상군을 따라간 식객 중의 한 사람이 진나라 대궐에 들어가 개 흉내를 내며 호백구를 훔쳐 와서 소왕의 애첩에게 전해 줄 수 있었다. 호백구를 받은 애첩이 소왕에게 그를 풀어 줄 것을 애원하니, 소왕은 맹상군을 제나라로 돌아 가도록 허락했다. 맹산군은 곧 말을 달려 한밤중에 국경 근처인 함곡관(涵谷關) 에 이르렀다.
얼마 후 맹상군을 풀어 준 것을 후회한 소왕이 군사를 보내 맹상군을 잡아오 도록 하였다. 맹상군이 급히 관문을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그곳의 법에 관문은 첫닭이 울기 전에는 열 수가 없었다.
이때 식객 중의 한 사람이 닭의 울음소리를 내자 모든 닭들이 따라 울었다. 이에 관문이 열리고 맹상군은 무사히 제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일행이 탈출 한 직후 추격대가 관문에 도착했으나, 이미 떠나간 뒤였으므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股肱之臣(고굉지신) :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뜻으로, 임금이 <다리 고><팔뚝 굉> 가장 가까이하며 신임하는 중신(重臣)을 일컫는 말이 <갈 지> <신하 신> 다.
☞ 신작짐고굉이목 여욕좌우유민여익 여욕선력사방여위
臣作朕股肱耳目 予慾左友有民汝翼 汝慾宣力四方汝爲
(그대들과 같은 신하들이 짐의 팔다리요, 눈과 귀로다. 내가 백성들을 돕고자 하니 그 대들도 힘써 도와 달라. 내가 위엄을 만천하에 떨치려 하거든 그대들이 대신해 달라.)
순임금이 신하들에게 자신을 잘 보좌하여 나랏일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한 말이 다.
鼓腹擊壤(고복격양) : 배를 두드려 박자를 맞추면서 격양놀이를 한다는 뜻 <북 고> <배 복> 으로, 백성들이 그처럼 태평할 만큼 그 시절이 평화스<칠 격> <흙 양> 럽다는 뜻이다.
☞ 백발 노인 한 사람이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격양놀이(옛날 중국에서 하던 유희의 하나)를 하는데, 배를 두드려 박자를 맞추면서 즐겁게 하고 있었다.
일출이작 일입이식
日出而作 日入而息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잠들며
착정이음 정전이식
鑿井而飮 町田而食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 갈아서 먹나니
제력하유진아재
帝力何有珍我哉 임금의 덕 따위야 무엇하리요
그 옆을 지나던 요(堯) 임금은 이 노래를 듣고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야 마 음이 놓이는구나. 백성들이 아무런 불만도 없이 배를 두드리며 격양놀이 등으 로 자기들의 생활을 즐기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잘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하며 기뻐했다는 것이다.
古稀(고희) : 예로부터 드물다는 뜻으로 70세를 고희라고 한다.
<옛 고><드물 희>
☞ 두보(杜甫)의 곡강이수(曲江二首)라는 시에 고희(古稀)라는 말이 나온다.
조회일일전춘의(朝回日日典春衣) 조정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입고
매일강두진취귀(每日江頭盡醉歸) 하루같이 강가에서 만취해 돌아온다.
주채심상행처유(酒債尋常行處有) 술빚은 예사로 도처에 있고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문 것이다.
두보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소릉(少陵)이 호이다. 전란으로 가족을 잃 는 등 개인적으로는 불행이 잇달았지만, 일생을 통하여 뛰어난 명시를 많이 남 겼다. ‘고희’라는 말은 이 시의 ‘인생칠십고래희’의 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예로부터 드물다(稀)는 뜻에서 보기 드물 나이에 도달함을 축하하는 의미로 사용 하게 되었다. 보통 70세를 가리켜 ‘고희’라고 한다.
曲學阿世(곡학아세) : 평소에 자기 신조나 소신, 철학 등을 굽혀 시세에 아 <굽을 곡> <배울 학> 첨함을 말한다.
<아첨할 아><세대 세>
☞ 원고생(轅固生)은 전한(前漢) 경제(景帝)때의 학자였는데, 무제(武帝) 때에도 다시 부름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엉터리 학자들이 어떻게든 황제의 뜻을 되돌 리려고 원고생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무제는 그 중상모략을 물리치고 원고생을 등용하였다. 원고생과 함께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소장 학자도 부름을 받았다. 공손홍은 늙어빠진 영감이라고 무시하는 눈초리로 원고생을 대했으나 원고생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렇게 말했다.
“공손자는 부디 자기가 믿는 학설을 구부려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부하지 말게 나(公孫子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절조를 굽히지 않는 원고생의 훌륭한 인격과 풍부한 학식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空中樓閣(공중누각) : 공중에 떠 있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현실성이 없는 일<빌 공><가운데 중> 이나 근본이 없는 이야기를 지칭하는 성어이다.
<다락 루><누각 각>
☞ 심괄(沈括)이 지은 몽계필담(夢溪筆談)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등주사면임해춘하시요견공제유성시누대지장사인위지해시
登州四面臨海春夏時遙見空際有城市樓臺之狀士人謂之海市
(등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멀리 수평선 위로 누각들이 줄을 이은 도시가 보인다. 지방사람들은 이것을 해시(海市)라고 한다)
그 후 청(靑)나라의 학자가 이 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금칭언행허구자왈공중누각용차사
今稱言行虛構者曰空中樓閣用此事
(지금 말과 행동이 허황된 사람을 가리켜 궁중누각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 을 말한 것이다)
비슷한 뜻으로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는 말이 쓰이기도 하는데, 역시 겉모양 은 번드르하지만 기초가 약하여 오래 가지 못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일 등에 빗 대어 사용한다.
管鮑之交(관포지교) :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처럼 서로 믿고 <대롱 관><절인고기 포> 이해하는 친밀하고 두터운 우정이나 교우 관계를 뜻 <갈 지> <사귈 교> 한다.
☞ 관중과 포숙아는 죽마지우였다. 처음에 둘이서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나누는데 언제나 관중이 많은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포숙아는 그를 탐욕스럽다고 여기 지 않았다. 관중의 집안이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포숙아를 위해서 일을 할 때에 여러번 실패를 거듭했지만, 포숙아는 관중을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유리한 때와 불리한 때가 있음 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세 번 벼슬하고 세 번 모두 임금에게 쫓겨났지만 포숙아는 관중을 무 능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세 번 전쟁터에 나아가 세 번 모두 도망쳐 왔을 때에도 포숙아는 그를 겁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관중에게 노모가 계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후 제(齊)나라에 내란이 일어나 관중이 모시고 있던 규(糾)와 포숙아가 모 시던 소백(小白)이라는 왕권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포숙아가 모시 던 소백이 승리하였으나 그가 바로 유명한 제나라 환공(桓公)이다.
환공은 왕위에 오른 후 규(糾)를 죽이고, 관중의 목을 베려 하였다. 그러나 포숙아의 설득으로 그를 용서해 주고 재상에 임명하였다.
그 후 관중은 환공을 도와 천하를 제패하였다. 포숙아의 관중에 대한 이해와 우정이 제나라를 부국강병한 국가로 만들어 천하에 이름을 알릴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관중은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라 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는 포숙아의 사람을 정확하게 알 아보는 눈이 밝은 것을 더 칭찬하였다고 한다.
刮目相對(괄목상대) : 얼마 동안 못 보는 사이에 상대가 깜짝 놀랄 정도로 <비빌 괄> <눈 목> 발전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 <서로 상> <상대 대> 고 상대를 다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부하로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매우 무식 한 사람이었으나 전쟁에서 공이 많아 마침내 장군이 되었는데, 어느 날 손권이 그에게 공부를 하도록 충고했다. 얼마 후 손권의 부하 중 가장 학식이 뛰어난 노숙이 여몽을 찾아갔다. 노숙은 이야기하는 사이에 여몽의 박삭함에 깜짝 놀 라고 말았다.
“언제 그렇게 공부했는가? 이제 학식이 대단하니 옛날의 여몽이 아니군.”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선비는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 야 하는 법일세.”
狡兎死良狗烹(교토사양구팽) : 교활한 토끼가 잡히면 충실한 사냥개도 쓸 <교활할 교><토끼 토><죽을 사> 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으로, 소 <어질 양><개 구><삶을 팽> 용이 없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없애 버 림을 가리킨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고도 함.
☞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항우(項羽)와의 싸움에서 유방이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한신(韓信)이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한신을 초왕(楚 王)으로 봉했지만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전할 것을 염려하였다. 이때, 항우의 부 하였던 종리매(鐘離昧)라는 장수가 옛친구인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보 고가 들었다. 유방은 종리매를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한신은 차마 옛친 구를 배반할 수 없어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도리어 그를 숨겨 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상소한 자가 있었으므로 유방은 진평(陳平)의 책략에 따라 제후들의 군대를 소집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한신은 자신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 각하여 자진해서 배알하려고 했다. 그러자 약삭빠른 가신이 한신에게 속삭였다.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배알하시면 폐하도 기뻐하시리다.”
옳다고 생각한 한신은 그 말을 종리매에게 했다. 그러자 종리매는 “유방이 초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자네 밑에 내가 있기 때문이네. 그런데 자네가 나 를 죽여 유방에게 보인다면 자네도 얼마 안 가서 당할 것일세. 자네는 정말 한 심한 일을 생각했군. 내가 자네를 잘못 보았네. 자네는 남의 장(長)이 될 그릇 이 아니군. 좋아, 내가 죽어주지.”하고는 스스로 목을 쳐 죽었다.
한신은 자결한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가서 유방에게 바치지만, 유방은 한신을 포박하게 했다. 그러자 한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도 잡혀 그 주인에게 먹히듯이, 온 힘을 다해 섬긴 내가 이번에는 유방의 손에 죽는구나.”
그러나 유방은 한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 대신 초왕(楚王)에서 회음후(澮陰 候)로 좌천시켰기 때문에 이후로는 회음후로 불리게 되었다.
群鷄一鶴(군계일학) : 많은 닭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많은 평 <무리 군> <닭 계> 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뛰어난 인물이 섞여 있는 <한 일> <학 학> 것을 비유한 말이다.
☞ 혜소(嵇紹)는 어릴 때 아버지가 무고한 죄로 죽은 후 어머니를 모시고 근신하 고 있었으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우이며 칠현(七賢)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가 당시 무제(武帝)에게 상주하였다. “혜강의 아들이긴 하나 그 영특함이 춘추시대 의 극결(郤缺)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부디 부르셔서 관직에 오 르게 해주십시오.” 황제는 그를 비서승(秘書丞)이란 관직에 오르게 했다. 소 (紹)가 처음으로 낙양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 에게 말했다. “어제 많은 사람들 틈에서 처음으로 소를 보았는데, 의기도 높은 것이 아주 늠름한 게 학 한 마리가 닭무리 속으로 내려앉은 것 같았녜(野鶴如在 鷄群 야학여재계군).”
君子三樂(군자삼락) :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다.
<군자 군><아들 자><석 삼><즐거울 락>
☞ 군자유삼락이와천하불여재언 부모구존형제무고일락야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在焉 父母俱存兄弟無故一樂也
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이락야 득천하영재교육지삼락야
仰不愧於天府不炸於人二樂也 得天下英才敎育之三樂也 「孟子」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은 이 세 가지 속에 들어 있지 않다.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움이 없고 사람을 굽어 보아도 부끄럽지 않음 이 둘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셋째 즐거움이다.
捲土重來(권토중래) : 한번 실패한 사람이 다시 분발하여 세력을 되찾아서 <말 권> <흙 토>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뜻이다.
<다시 중><올 래>
☞ 勝敗兵家不可期 승패는 병가도 기할 수 없는 것
승패병가불가기
包羞忍恥是男兒 수치를 참을 수 있음이 바로 남아라
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俊才 강동의 자제에는 준재가 많으니
강동자제다준재
捲土重來未可知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으면 승패를 알 수 없을 터인데
권토중래미가지
위의 시는 두목(杜牧)이 항우(項羽)에 대하여 읊은 시 중의 하나이다. 항우가 죽은 지 천여 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두목이 나루터에서 항우의 인품을 그리며 젊은 나이(31세)로 죽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두목의 시에는, ‘강동에 계시는 부모 형제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고 견디었더 라면 우수한 자제가 많은 곳이므로 만회할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하고 항우를 애석하게 여기는 정이 배어 있다.
錦上添花(금상첨화) : 비단옷을 입은 데다가 꽃을 가진다는 뜻으로, 좋은 <비단 금> <위 상> 일에 또 좋은 일이 더해진다는 말이다.
<더할 첨> <꽃 화>
☞ 다음 시는 왕안석(王安石)이 만년에 정계를 떠나 은거해 살 때 지은 즉흥시이 다.
하류남원안서사
河流南苑岸西斜 강은 남원을 흘러 언덕 서쪽으로 기우는데
풍유정광로유화
風有晶光露有華 바람엔 맑은 빛이 있고 이슬에는 꽃이 있다
문류고인도령댁
門柳故人陶令宅 문 앞의 버들은 옛사람 도령의 집이요
정동전일총지가
井桐前日總持家 우물가의 오동은 전날 총지의 집이다
가초욕복배중록
嘉招欲覆盃中淥 좋은 모임에서 잔 속의 술을 비우려 하는데
여창잉첨금상화
麗唱仍添錦上花 고운 노래는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편작무릉준조객
便作武陵樽俎客 문득 무릉의 술과 안주를 즐기는 손님이 되어
천원응미소홍하
川源應未少紅霞 내의 근원에 응당 붉은 노을이 적지 않으리라
錦衣夜行(금의야행) :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말로 아무리 출세해도 <비단 금> <옷 의> 남이 인정해 주지 않음을 뜻한다.
<밤 야> <갈 행>
☞ 항우(項羽)가 함양(咸陽)에서 입성에 성공한 후 사정에 의해 고향에 돌아기지 못함을 한탄해서 한 말이다.
부귀불귀고향여의금야행 수지문자
富貴不歸故鄕如衣錦夜行 誰知文者
(부귀를 이루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걷는 것과 같 다. 이것을 누가 알쏘냐!)
杞人之憂(기인지우) : 기우(杞憂)라고도 함. 기(杞)나라 사람의 근심이란 <나라이름 기><사람 인> 뜻으로, 공연히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갈 지> <근심 우>
☞ 기나라의 한 사람이 만약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걱정하여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목으로 넘기질 못했다. 그러자 한 친구가 찾 아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공기가 쌓인 것이므로 하늘이 무너진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네. 그리고 땅도 흙덩이가 쌓인 것뿐이라네. 그것이 사방에 꽉차서 흙이 없는 곳은 없지. 왜 땅이 꺼지는 것을 걱정하나?”
그러자 비로소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출처 : 자연속의 쉼터글쓴이 : 산과벗 원글보기메모 :'天 地 玄 黃 中 人'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꼭 알아야할 한자성어 100개> (0) 2009.08.01 [스크랩] 주제별 고사성어/主題別 古事成語 (0) 2009.08.01 [스크랩] 유래가있는 고사성어(ㄴ) (0) 2009.08.01 [스크랩] 유래가있는 고사성어(ㄷ) (0) 2009.08.01 [스크랩] 유래가있는 고사성어(ㅁ) (0) 2009.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