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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을숙제 (22)이해인 수녀님의 詩 2011. 12. 17. 15:42
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명상의 창>
이해의 선물
수도자의 입장에서 모든 이를 사랑하는 일이 힘들게 여겨
질 때가 있다.
예수님을 닮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길에서 내가 멀리 있
다고 느낄 적마다 다시 읽어보는 빌라드의 동화 (이해의
선물)은 늘 미소를 머금게 한다.
어머니를 따라 사탕가게를 들르곤 했던 한 어린이가 어느
날 혼자서 그 가게에 들렀다. 그가 사탕을 사며 돈 대신 버
찌씨 여섯 개를 내밀며 모자라느냐고 물었을 때 "아니, 좀
남는걸" 하며 거스름돈을 내주던 주인의 그 넉넉한 마음.
그 어린이가 성장해 어항가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제법
비싼 물고기를 주문한 두 어린이가 예전의 자기와 비슷한
행동을 할 때 오히려 거스름돈을 내어주며 옛 추억에 잠기
는 장면은 언제 읽어도 가슴 찡하고 훈훈한 감동을 준다.
사탕가게 주인이 어린이의 마음속을 헤아려 손해를 보면
서도 기꺼이 선물을 한 것처럼 사랑은 날마다 상대방의 입
장을 헤아려 자신의 키를 낮추는 겸손과 따뜻함이 아닐까.
우리는 서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실망하고 때로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마음을 상하곤
한다. 매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
라 하루가 어둡고 하루가 밝아진다.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수없이 되
풀이하면서도 나를 비우고 선뜻 상대방의 입장으로 들어가
서 이해하는 덕을 쌓기란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사람
의 관계는 진정 겸손과 인내의 노력 없이는 깨지기 쉬운 그
릇이며 시들기 쉬운 꽃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리고 그를 편하게 해
주는 것이 이해의 선물이고, 이해의 선물이 곧 사랑일 것이
다.
옹졸함을 툭툭 털고 밝게 웃어보고, 웬만한 것은 넓은
마음으로 그냥 넘어가고,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멀리 내다
보고 조금 더 양보하고, 때로는 알면서도 속아주며, 복수하
고 싶은 마음을 용서로 바꿔 기도를 멈추지 않는 이해의 선
물로 나도 이제 좀더 깊고 넓은 사랑을 키워가야겠다.
<116쪽~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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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수녀원 장독대의 항아리들은 자주
내 시의 소재가 되어주었다.
우리와 함께 바다를 내다보고 종소리를 들으며
삶의 시를 쓰는 항아리들......
간장을 뜨면서 침묵의 세월이 키워준 겸손을 배우고
고추장을 뜨면서 맵게 깨어 있는 지혜와 기쁨을 배우고
된장을 뜨면서 냄새나는 기다림 속에
잘 익은 평화를 배우네.
-----시 <장독대에서>에서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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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한 말씨
' 주 야훼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
를 일깨워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신다'(이사야
50:4), 이는 내가 즐겨 외우는 聖句(성구)다. 이 내용처럼 '배
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하게 하소
서' 하는 기도를 바치며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이다. 누구에
게나 마찬가지겠지만 종교인들, 특히 남을 가르치는 일에
몸 담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잘못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
는 사석에서도 입만 열면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말씨를
쓰는 것이다.
빼어난 설교로 명성이 높은 분들의 말을 듣다가도 그 내
용은 훌륭하지만 표현방법에 겸허함이 부족해서 실망한 적
이 많다. 삶의 체험이나 신앙을 이야기할 적에도 확신에 차
있으되 겸양하고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말씨를 써야 하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나 지나치게 당당하고 자신의 뜻만 고집하는
오만한 말씨는 거북하고 부담스럽다. 가끔 지인들이 내게
삶의 지침이 될 만한 말이나 글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어서
좋은 말이나 글을 수첩에 따로 모아두곤 한다. 그러나 책에
서 찾은 좋은 말들조차 나 자신에게 적용시키려는 노력보다
는 남에게 인용할 생각부터 먼저 하는 내 모습에 부끄러움
을 느낀 적이 있다.
우리 모두 남을 가르치려 하기 전에 먼저 정성스럽게 경
청하는 자세를 지니자. 나무라기보다는 격려하고, 명령하기
보다는 권면하는 겸손한 말씨를 날마다 새롭게 연습해야 하
리라.
요즘처럼 거칠고 무례하고 날카로운 말씨가 난무하는 세
상에서 종교인들만이라도 솔선수범하여 이웃에게 꽃 한 송
이 건네는 고운 마음, 봄바람을 실어주는 부드러운 마음으
로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성전에 바치는
기도 이상으로 향기로운 기도가 되며, 삶 속에서 빛나는 사
랑의 기도로 주위를 환히 밝힐 것이다.
<120쪽~~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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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을
잘 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소중하고 귀한
시간
헛되이
보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
더
가을이 저 만치
사라지기 전에
가을숙제
부지런히
해야겠다.
2010년 11월 13일
철없는 농부의 아내
윤주
출처 : 민들레의 영토글쓴이 : 나무와새 원글보기메모 :'이해인 수녀님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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