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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을숙제 (21)이해인 수녀님의 詩 2011. 12. 17. 15:42
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명상의 창>
용서하십시오
솔숲 사이로 보이는 진달래꽃이 아름다운 봄, 3월은 내가
오래 전 수도생활을 시작한 달이어서 더욱 정겹다. 3월에
입회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나는 아직도 가슴이 뛴다.
처음에 입회해서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한 어린 예비수녀
였던 내게 가장 신선하게 와 닿은 것은 당연한 듯 보이는
일에도 서로 아낌 없이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 아주 사소
한 실수에 대해서도 서로 미루지 않고 용서를 청하는 모습
이었다.
우리는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공동체에 불편을 끼
친 자신의 허물과 실수에 대해서 서로 사과하고 용서를 청
하는 시간을 가진다. 자신의 잘못을 타인 앞에서 소리내 고
백하는 것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늘 부끄러운 노릇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기의 못난 점이나 잘못을 솔직하고 겸
손하게 고백하는 모습은 자기의 잘난 점이나 성공담을 자랑
하는 이의 모습보다 훨씬 아름답고 존경스럽게 보인다.
'용서하십시오'라는 말은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과는 좀더 다른 여운과 향기를 풍긴다. '용서하십시오'라
는 말에는 자신을 낮추는 부끄러움과 뉘우침이 들어 있다.
뽐내지 않는 겸허함과 기도가 들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을 하
는 데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표현하는 것은 좋
아보이는데 막상 내가 하려고 할 때면 왜 그리 쑥스럽고 부
끄러운지.
그렇게 밥 먹듯이 쉽게 했던 이 말을 나는 요즘 그리 자주
하지 않는다. 초심자 시절에 가졌던 예민함과 순진함을 잃
어버리고 연륜과 더불어 적당히 무디어지고 뻔뻔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에 나는 작은
잘못에도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고 다른 이의 잘못을 너그
러이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한다. 3월의 꽃샘바람처럼
깨어 있는 자세로 '용서하십시오'라는 말도 더 자주 연습해
야겠다.
우리 모두 '피차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하십시
오'(콜로 3:14)라는 성구를 날마다 새겨 읽고 실천하며 용서
의 꽃밭을 가꾸어가는 새 삶의 주인공이 되면 좋겠다.
<109쪽~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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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의 행복
"수녀님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선물의 집이네요, '누굴 만
나면 선물 줄 궁리부터 하나보지요?" " 그 허름한 헝겊가방
에서 끝없이 오밀조밀한 것들이 나오니 요술가방이 따로 없
네!"
함께 사는 이들로부터 늘상 이런 말을 듣고 사는 나는 "글
쎄, 주는 선물이라도 너무 집착하면, 곤란할 텐데....... 절
제하려고 결심하지만 잘 안되네요"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도 행복하다.
오늘도 나는 글방 안에 마련해둔 초록색 선물바구니를 흐
뭇한 마음으로 들여다본다.
빨간 리본이 달려 있는 네모난 바구니 안에는 색연필, 크
레용, 꽃카드, 꽃접시, 꽃차, 향초,카드,메모지, 손수건, 책
갈피,스티커, 책, 묵주 등이 언젠가 선택될 시간을 기다리
며 가만히 웃고 있다.
이미 내게 있는 책이 다시 생겼거나 특별한 날 내가 선물
받은 것들 중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가서 더 빛이 나고 도움
이 될 것들을 바구니에 모았다가 나누는 것은 아주 오래 익
힌 습관이다.
이웃에게 줄 선물이 필요할 때 나는 일단 이 예비선물 바
구니에게 적합한 것을 골라 선물받을 이에게 어울리는 글을
적고, 바닷가에서 내가 주워온 구멍난 조가비에 리본을 끼
워 예쁘게 포장을 한다. 어떤 이에게 꼭 어울리는 선물을 발
견했을 적엔 얼마나 반가운지 혼자서 흥분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선물받는 이의 밝은 표정과 졍겨운 웃음을 미리 상
상하며 즐거워하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살짝 들키기를
바라기도 한다.
'사람들이 수도자에게는 그리 큰 선물을 바라진 않을 거
야' 하는 믿음이 있기에 선물을 맘에 안 들어하면 어쩌나 하
는 근심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선물을 준비하
는 그 과정이 나에겐 하나의 기도이며 사랑의 작은 예식이
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부담이 된다 하더라도 선물은 사
람을 행복하게 한다. 서로 마음만 통하면 되지 꼭 드러나는
선물을 해야 하는 거냐고 누가 볼멘소리를 하면 "사랑은 표
현을 원하니까요"라고 대답하면서 선물에 너무 인색하게
구는 것보다는 차라리 헤픈 게 나은 것 같다는 내 나름의 생
각도 길게 펼쳐 이야기하곤 한다.
"저 드릴 선물이 하나 있는데요" 하고 누군가 말하면 이
내 궁금해지고, 선물포장을 뜯는 순간 문득 기대와 설렘으
로 가득한 마음이 되지 않는가? 내가 보낸 선물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글을
받으면 마음이 환해진다. '세상에 사는 동안 더 열심히 작
은 선물을 나누어야지'하는 아름다운 다짐도 새롭게 하게
된다.
선물이 보물이 되려면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
리라. 아주 오래 전 내가 어느 성당에서 강의를 끝냈을 때
신자 한 분이 와서 "수녀님은 헝겊가방을 좋아하신다기에
제가 밤새 만든 것인데 맘에 드실지요?" 하며 건네준 조
그만 갈색 퀼트 가방을 나는 아직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얼마 전엔 제주도의 독자가 직접 키운 것이라며 수선화
다발을 택배로 보내주어 그 특이한 향기를 시들 때까지 맡
았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내가 선물하고 싶은 사람에
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기쁨, 상대
를 먼저 배려하는 겸손한 기쁨, '선물을 위한 선물'을 할 줄
아는 기쁨...... 이러한 기쁨들이 더 많이 넘쳐나는 세상이
면 좋겠다.
나의
10대엔 어머니가 만들어준 꽃골무와 노리개를,
20대엔 내가 즐겨 외우던 애송시들을,
30대엔 내가 쓴 자작시들을 ,
40대엔 좋은 책들을,
50대엔 뜻깊은 기도문들을
벗과
친지들에게 많이 나누어준 것 같다.
이제
60대에 접어들면서 나는 더욱 마음을 고요히 하고
물빛 담백한 사랑의 편지를 쓰기로 한다.
앞으로 책상 위의
선물바구니에 들어갈 물건들을 줄더라도 마음의 바구니는
비지 않도록 알록달록한 무지갯빛 사랑을 가꾸고 키우고 나
눌 준비를 새롭게 하리라.
선물받는 것보다 선물하는 것이 더 기쁘다고 말하기 보
다는 선물을 주는 것도 기쁘고 받는 것도 기쁘다고 고백하
면서 날마다 새롭게 선물을 준비하는 '선물의 집'이 되고
싶다.
<109쪽~~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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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가비를 담아 선물하는 색종이 상자.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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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
깊어가는
가을여행
참
행복이었다
우리명랑구름수녀님
뵙고
왔으면
더할 나위 없이
잊혀지지 않는
가을여행이 되었을 것인데
남겨두고 왔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수녀님
부산집으로 얼른
돌아오세요
2010년 11월13일
철없는 농부의아내
윤
주
출처 : 민들레의 영토글쓴이 : 나무와새 원글보기메모 :'이해인 수녀님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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