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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가을 숙제 (10)
    이해인 수녀님의 詩 2011. 12. 11. 12:57

                                                       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詩(시)의 창>

     

     

     

    생일을 만들어요, 우리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한 날

    첫 꿈을 이룬 날

    기도하는 마음으로 희망의 꽃삽을 든 날은

    언제나 생일이지요

     

    어둠에서 빛으로 건너간 날

    절망에서 희망으로 거듭난 날

    오해를 이해로 바꾼 날

    미움을 용서로 바꾼 날

    눈물 속에서도 다시 한번 사랑을 시작한 날은

    언제나 생일이지요

     

    아직 빛이 있는 동안에

    우리 더 많은 생일을 만들어요

    축하할 일을 많이 만들어요

     

    기쁘게 더 기쁘게

    가까이 더 가까이

    서로를 바라보고 섬세하게 읽어주는

    책이 되어요

     

    마침내는 사랑 안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선물이 되어요

    늘 새로운 시작이 되고

    희망이 되어요, 서로에게ㅡ

     

       

              <64쪽 ~65쪽>

     

    ****************************

     

     

    지혜를 구하는 기도

     

     

    오늘 하루도

    지혜 한 톨 주십사고

    기도드립니다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할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진리의 길에서도

    헤맬 적이 많습니다

     

    하얀 눈꽃을 닮은

    지혜 한 톨 받아

    열심히 가꾸고 키우다 보면

    마음의 눈이 밝아질까요

     

    남에게 슬픔을 안기지 않는

    따뜻하고도 지혜로운 사람이

    진정 될 수 있는 걸까요

     

     

                 <66쪽>

     

     

    ***********************************

     

     

    침묵

     

     

    애 많이 안 쓰고도

    온전히 침묵할 수 있는

    겨울나무는 좋겠다

     

    우리가 말을 하다 보면

    말을 잘못 한 사람도

    잘못 전한 사람도

    잘못 들은 사람도

    모두가 슬퍼서 울게 된다

     

    겨울엔

    한 가지 소원만

    되풀이해도 좋으리

    가슴 깊은 곳에

    침묵의 눈꽃을 품게 해달라고

    말의 열매는

    더디 열리게 해달라고ㅡ

     

     

            <67쪽>

     

     

    ***********************************

     

     

    10월 엽서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잘 익은 셕류를 쪼개 드릴게요

    좋아한다는 말 대신

    탄탄한 단감 하나 드리고

    기도한다는 말 대신

    탱자의 향기를 드릴게요

    푸른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붉은 단풍에 물들어

    더욱 따뜻해진 내 마음

    우표 없이 부칠 테니

    알아서 가져가실래요

    서먹했던 이들끼리도

    정다운 벗이 될 것만 같은

    눈부시게 고운 10월 어느날

     

     

           <68쪽>

     

    ****************************

     

     

    가을길

     

     

    바람이 지나가다

    내 마음의 창문을

    살짝 흔드는 가을길

    탱자, 시냇물, 어머니

     

    그리운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잠시 멈추어 선 가을길

     

    푸른 하늘을 안으면

    나의 사랑이 넓어지고

    겸손한 땅을 밟으면

    나의 꿈이 단단해져요

     

    이제 내 마음에도

    서늘한 길 하나 낼 거예요

    쓸쓸한 사람들을 잘 돌보는

    나무 한 그루 키우려고......

     

     

           <69쪽>

     

    ++++++++++++++++++++++++++++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아주 먼 옛날

     (삼십년전)

      여고시절

     

    책받침이나

    연습장에 적어 놓고

     늘 보았던

     

    푸시킨의 시

     

    문득 떠오르는

     

    시월

    세번째 토요일

     

    늘 눈떠지는

    이른 고요한

    새벽

    입니다

     

     

     

     

     

    2010년 10월16일

     

     

    철없는 농부의 아내

     

     

     

     

     

     

    출처 : 민들레의 영토
    글쓴이 : 나무와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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