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왠지 무료증에 걸린 사람처럼
그냥 두눈을 감고싶다.
찿아주는 사람도. 찿아갈 사람도 없이...
나를 불태우고 싶다.
설령 죽음이 나를 찿아온다해도
거부하는 방법을 모르는체...
그래서 이노래가 듣고싶다
토니 차일즈가 부르는 죽은자의 춤을
......
2011.03.21 산여울
1990년대 후반 델마와 루이스에 "House Of Hope" 가 삽입되었고, 2003년 국내 TV 드라마 '첫사랑'에 삽입되어, 'Dead are dancing'으로 국내에 알려진 미국 출신의 록 아티스트 토니 차일즈 Toni Childs 입니다...
원래 이 곡은 칠레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행방불명된 사람들에게 바쳐진 송가로서 정확하게
이 노래는 살바도르 아엔데 정권을 붕괴시킨후 일어난 미국의 지원을 입은 군사독제 정권시기에 의문사와 실종된 이들을 기리는 노래입니다.
The Dead Are Dancing
- 토니 차일즈 -
I see a graveyard's past The revolution's taken back whatever happened to the sons No more sunshine here Only darkness here
난, 혁명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이 묘지들의 과거를 본다네 많은 아이들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것인지 더이상 이곳에는 포근한 햇님이 찾질 않으며, 오직 이곳에는 짙은 어둠만이 함께 한다네
There's no-one living in this town Cause the dead are dancing The dead are dancing The dead are dancing in the town
아무도 이 마을에는 살지 않는다네 그 이유는, 죽은자들이 춤을추기 때문이라네 죽은자들이 춤을 춘다네 이 마을엔 죽은 자들이 춤을 춘다네
Mother mary comes to me in this graveyard of hypocrisy But father renta says I'll have to pay In the dead are buried lies A sinful phantom cries Can't we just rest up on the
이 위선으로 가득한 묘지에서 성모 마리아가 내게로 왔다네 하지만 렌타 신부는 내게, 댓가를 지불하라 말하지 죽은자들 속에는 거짓이 숨어있고, 죄악으로 가득찬 유령들은 울부짓고 있으니, 우린 이 언덕에서 단지 휴식을 취할수도 없는걸까?
But the moonlight calls us The moon, it calls us up and out into the town Yes, the dead are dancing The dead are dancing The dead are dancing in the town
하지만 달빛은 우리에게 속삭이지 달님은, 우리들에게 말한다네 무덤에서 일어나 이 마을로 오라고 그래, 죽은 자들이 춤을 춘다네 망자들이 춤을 춘다네 이 마을엔 망령들이 춤을 춘다네
Heaven does it come to me in the dreaming that my soul's been freed And the torment of my madness gone away And though god says he loves And I, I think of love I cannot change the way I am
꿈속에 천사가 다가와 말한다네 내 영혼은 이미 자유를 찾았다고... 내 광기어린 고통들이 사라졌다고... 그리고 신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노라."고 말한다 해도, 내가, 내게있어 사랑이란... 내가 가는길을 바꿀수는 없는 것이지
And so the moon, it calls me The lunatic calls me up and out into the town Yes, the dead are dancing The dead are dancing The dead are dancing in the town
하지만 달빛은 내게 속삭이지 내게 소리친다네 무덤에서 일어나 이 마을?오라고 그래, 죽은 자들이 춤을 춘다네 망자들이 춤을 춘다네 이 마을엔 망령들이 춤을 춘다네
1973년 9월 11일 오전 8시 30분, 칠레의 주요 방송국들은 갑자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일제히 군가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곧이어 사람들은 지난 수개월간 우려하던 사태가 드디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당시 대통령 관저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몇몇 각료와 비서 등의 측근과 경호원 수십 명이 머물고 있었다. 쿠데타 세력은 대통령 일행이 투항할 경우 신변을 보장하고 해외로 내보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옌데는 이런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곧이어 그의 생애 마지막 연설이 아직 쿠데타 세력에게 접수되지 않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칠레 국민 여러분, 이 연설은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연설입니다. (…) 이 역사적 시점에서 나는 민중에 대한 충성을 목숨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우리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 본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다가가지 않을 것입니다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계속해서 그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그것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국민 여러분은 혁명에 헌신한 정직한 인간으로서 저를 기억할 것입니다. 본인은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누군가가 이 암울하고 쓰라린 순간을 극복해 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칠레여, 영원하라!”
협상 시한인 오전 11시가 되자 측근들은 모두 대통령과 최후까지 함께 하기로 작정했고, 아옌데는 일찍이 카스트로에게 선물 받은 기관총을 집어 들고 항전을 준비한다. 11시 55분, 공군 폭격기가 대통령 관저에 폭탄을 떨어트리기 시작했고, 양측의 총격전이 시작된다. 오후 1시 30분, 쿠데타 세력은 마지막 기회라며 전원 투항할 것을 권했다. 아옌데는 중과부적임을 깨닫고 측근들에게 모두들 투항하도록 명령했으며, 자신도 곧 이들을 따라 투항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 직후의 사건에 관해서는 여러 사람의 증언이 엇갈린다.
일부는 아옌데가 자살했다고, 또 일부는 아옌데가 사살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날은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망일인 동시에 칠레 민주주의의 사망일이기도 했다. 곧이어 수립된 군사정권은
이후 17년 동안이나 철권을 휘둘렀으며, 쿠데타 직후의 광범위한 인권 탄압으로 인해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수천 명에 달하고 해외로 망명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군부 독재가 끝나고 민간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1990년,
사망 다음날부터 줄곧 지방의 작은 묘지에 묻혀 있던 아옌데의 시신은 합당한 예우를 거쳐 수도 산티아고의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하지만 아옌데 정권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그의 최후에 관한 증언만큼이나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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