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님의 詩

[스크랩] 가을 숙제 (34)

한조각뜬구름 2011. 12. 17. 15:47

                                     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독서의 창>

 

 

님은 나늘 영원케 하셨으니

 

<기탄잘리>, 타고르

 

 

  님은 나늘 영원케 하셨으니 그것이 님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님은 수없이 비우시곤 또 항시 신선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작은 갈피리를 님은 언덕과 골짜기 너머로 나르셨습니다.  그리

고 님은 그것을 통해 항시 새로운 선율을 불어내셨습니다.

 

  님의 불멸의 손길에 닿아 내 어린 심장은 기쁨에 녹아들어 형언키

어려운 말을 외칩니다.

 

  님의 무한한 선물을 나는 이 작은 두 손으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

다.  세월은 가도 님은 여전히 부어주시니 채울 자리는 여전히 있습

니다.

 

----<기탄잘리>

 

 

    운숙 수녀님, 수녀님도 이 시를 애송한다고 하셨지요?  103편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는 <기탄잘리Gitanja;i>는 '신께 바치는 노래'라

는 뜻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제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

습니다. 

 

 특히 제일 첫 노래인 이 시는 윤동주의 <서시>와 함께 제가

가장 많이 되풀이해 읽었던 시이며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는

기도시입니다. 

 

여학교시절 이미 타고르의 <원덩><초승달><기탄잘

리>에 매료되었고, '내 마음이여, 고요해다요.  이 큰 나무들은 기도

인 것을' '별들은 자기네가 반딧불로 잘못 보이지나 않을까 걱정하

진 않는다'는 그의 경구들을 늘 적어서 갖고다니며 친구들에게도 나

누어주곤 했지요. 

 

 아직 어린 나이라 시의 깊은 뜻을 다는 모르면서

도 <기탄잘리>에 등장하는 그 영원한 님이 저는 무작정 좋았습니다.

 

비록 다른 종교전통 안에서의 님이었으나 그 님은 항상 순수하고 황

홀한 빛과 사랑으로 저를 압도했으며, 저도 그분이 즐겨 부는 '작은

갈피리'가 되고 싶다는 고운 갈망을 키우게 했습니다. 

 

<기탄잘리>를

통해서 저는 영혼과 영원의 세계에 새롭게 눈뜨고, 신과 자연과 인

간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으며, 미풍처럼 속삭여오는 거룩한 부르

심을 들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수도원에 간 언니의 영향도 컸으나

시성 타고르의 <기탄잘리>야말로 제가 망설임 없이 수도생활을 선

택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 서로의 아름다운 꿈과 우정을 나누던 이성

친구들이 제게도 몇 명 있었지요.  바위, 별님, 선인장 등의 상징으로

제가 가끔 시에서 표현하기도 했던 그 친구들은 끔직이도 저를 위하

여 아껴주던 사랑의 벗들이었는데....... 저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면

서도 "그래, 나는 정말 서운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너는 하느님의 것

임을 알아듣겠어.  부디 건강하게 끝가지 수도생활 잘할 수 있길 바란

다"며 순순히 저를 놓아주었답니다. 

 

어떤 친구는 "성녀의 길을 가려

는 소녀이기에 나는 한 점 바람이라도 일지 않게 해야겠다고 마음먹

지만......"  하는 애절한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가슴이 뜨거

운 젊은 시절에 자신의 욕심을 비우고 상대방의 행복을 먼저 헤아리

고 축복할 줄 알았던 그 친구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큰 님에게로

향해 가는 저의 발거음을 막지 않고 길을 비켜주던 그 작은 님들의

존재가 살아갈수록 더욱 고맙고 귀하게 생각됩니다. 

 

하긴 그들 역시

단테의 <신곡>이나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읽으며 한때는 구도자의

삶을 꿈꾸었기에 그런 갸륵한 말들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군요.

 

 

 

  가슴이 굳어 바싹 마른 때엔 자비의 소나기와 더불어 오십시오.

  우아함이 생활에 읽어진 때엔 드높은 노랫소리 더불어 오십시오.

 

  시끄러운 일이 사방에서 극성 떨며 나를 가둬버릴 때엔 말없는 주

여, 님의 평화와 휴식을 가지고 내게로 오십시오.

 

  구석에 갇히어서 내 거지 같은 마음이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엔

왕이여 이 문을 부수어 여시고는 왕의 위의를 갖추고 오십시오

.

  욕망이 마음을 망상과 먼지로 눈멀게 할 땐 오, 거룩한 이여, 깨어

있는 자여, 님의 빛과 우레를 가지고 오십시오.

 

-- <기탄잘리 39>

 

 

 

  단단한 각오와 설렘 속에 시작했던 수도생활에서 가끔 믿음이 흔

들리거나 저쪽에 두고 온 인간적인 애정을 포기하기 어려울 때마다

 

토마스 A.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음>과 함께 타고르의 <기탄잘

리.>를 도서실에서 빌려다 읽곤 했는데 특히 위의 시를 반복해서 읽

던 기억이 납니다. 

 

하늘과 바다와 꽃과 노을을 보기만 해도 마구 가

슴이 뛰던 갓스무 살의 예비수녀는 그때마다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

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지요. 

 

<기탄잘리>를 읽으면 제 좁은 마음이

넓어지고, 어둡고 스산했던 내면이 환해지며, 추루했던 제 영혼이

한껏 고양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인류사에 길이 시성詩聖으로

남을 만한 위대한 시인이 영혼으로 토해낸 기도시들을 읽는 순간에

는 제 안에도 아름다운 봉헌의 촛불이 펄럭이고, 순결한 꽃 향기가

가득해짐을 느꼈습니다. 

 

 그 무렵은 종이도 귀한 시절이라 병원에서

나오는 약 설명서 뒷면에 저는 가씀 시 비슷한 낙서들을 하기 시작

했지요.  그로부터 10여 년 후, 제가 틈틈이  써 모은 기도시들이 세상

의 빛을 보게 되었을 때" 수녀님의 연작시 <가을편지>를 읽는 동안

문득 타고르의 <원정>을 떠올렸답니다"하는 어느 독자의 편지를 받

았을 때의 그 조용한 환희와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코 시성 타고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미약한 저이지만 '신께 바

치는 노래들'을 부르며 시처럼 살고 싶은 꿈을 부분적으로나마 이루

었다는 생각에 몹시 설레고 감격스러웠습니다. 

 

 타고르는 저를 시인

으로까지 만들어준 셈입니다.

 

수녀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1994

년 12월. 마더 테레사와의 인터뷰를 위해 인도에 갔다가 타고르의

생각와 기념관 등을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삶과 예술이 일치

했던 타고르의혼이 살아쉼쉬는 인도에까지 직접 가게 되리라곤 정

말 상상조차 못했던 일입니다. 

 

1912년. <기탄잘리>가 쓰여지던 해는

바로 제 어머니가 이 세상에 태어나신 해이기도 했고, 저는 타고르

가 세상을 떠난 4년 후인 1945년에 이 세상에 태어났답니다. 

 

그의

사후 53년 만에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한 제가, 생전에 타고르가 세

운 산티니케탄의 '숲속의 학교'에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마더 테레사

도 기뻐하시며 당신 역시 타고르를 매우 존경한다고 하셨습니다. 

 

 박

물관에서 타고르의 많은 사진들을 볼 때는 '오, 나의 시를 즐겨 읽던

어린 소녀야, 이젠 제법 나이든 구도자의 모습으로 이렇게 인도까지

왔구나' 하며 흰 옷을 떨쳐입은 채 은은한 미소로 저를 반겨주는 것

만 같았습니다. 

 

타고르 시인협회 회장인 김양식 시인과 타고르의 동

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타고르가 연극할 때 입었다는 옷도 만져보

고, <기탄잘리>의 산실인 '마하리'라는 곳에서 그의 시를 낭송하며

앉아 있는 제 모습을 다시 보았지요.

 

 

 

  수녀원에서 저에게 <기탄잘리>를 제일 먼저 선물하시고 또 그 책

을 다시 빌려가기도 하셨던 운숙 수녀님, <기탄잘리>의 열렬한 애독

자인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나이차를 뛰어넘어 금방 가까

운 친구가 될 수 있었지요? 

 

특별한 기념일에는 손수 <기탄

잘리>의 글귀들을 고운 종이에 적어주기도 하셨던 수녀님,

이번엔 제가 수녀님께 선물할 차례입니다. 

 

제가 인도를 다

녀와서 쓴 타고르에 대한 시 몇 구절을 <기탄잘리> 책갈피

에 끼워드리겠습니다.

 

 

 

 

   인도의 강가에서 태어나

   강과 같은 시를 쓰고

   인도인과 세계인의 가슴속에

   아름답고 따뜻한 강으로

   살아흐르는 시인이여

   인간은 흐르기를 그치지 않는

   하나의 강이라고 말했던 시인이여

   (...)

   이제 당신이 태어나 생가에서

   당신의 숨결을 느껴보고

   당신이 세우신 숲속의 대학

   나무 그늘에서

   당신의 시를 큰소리로 외우는

   나무 같은 학생들을 만나며

   당신의 푸른 미소를 봅니다

   (...)

   급변하는 현대의 물질문명에

   사람들 마음이 미혹당해

   선과 평화왓 사랑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고 괴로워했던 당신

   위대한 일을 하면서도

   숨고 싶어하며

   일상의 작은 의무에 대한 충실성과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평범한 삶을

   끊임없이 예찬하고 동경했던 당신

    (...)

    세계와 인류를 향해

   사랑과 평화의 흐름을 멈추지 않는

   길고 긴 시의 강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살아있는 강이 되라 하십니다.

 

 

 

   ---<강으로 살아흐르는 시인이여>에서

 

 

 

 

                   <173쪽 ~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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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따스한데

 

바람찬

금요일

오후랍니다

 

 

 

 

 

 

 

 

 

 

 

2010년 11월26일

 

 

 

철없는 농부의 아내

 

 

 

 

 

출처 : 민들레의 영토
글쓴이 : 나무와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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