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님의 詩

[스크랩] 가을 숙제 (30)

한조각뜬구름 2011. 12. 17. 15:46

                               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독서의 창>

 

 

 

 

내면을 깨우는 시원한 바람

 

 *선방일기*, 지허

 

 

 

  "오후에 바람이 일더니 해질녘부터는 눈발이 날렸다.  첫눈이어서

정감이 다사롭다.  오늘도 선객禪客이 여러 분 당도했다.(...) 어둠이

깃드니 무척이나 허전하다.  세속적인 기분이 아직도 소멸되지 않고

잠재되어 있다가 불쑥 고개를 치민다.  이럴 때마다 유일한 방법은

화두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객은 모름지기 고독해야 한

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벅찬 일이

기 때문이다.(...)누구보다 비정하기에 다정다감할 수도 있다.  누구

보다도 진실로 이타적이기 위해서는 진실로 이기적이어야 할 뿐이

다.  모순의 극한에는 조화가 있기 때문일까."

 

 김장 울력(스님들이 함께하는 공동작업), 결제, 선방의 생태, 선객

의운명, 본능과 선객, 용맹정진, 별식의 막간, 열반에 이르는 길 등

23개의 주제로 수행자의 일과를 적은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는 내

가 강원 춘천에 갔을 때 장익 주교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인데 언제

읽어도 감칠맛이 있다.

 

  1973년 <신동아>논픽션 당선작이기도 했던 것을 내용이 하도 좋

아 단행본으로 엮었다고 한다.

 

  "그믐이다, 삭박하고 목욕하는 날이다.(...)날카롭게 번쩍이는 삭

도가 두개골을 종힝으로 누비는 것을 볼 때는 섬뜩하기도 하지만 머

리카락이 쓱쓱 밀려 내릴 때는 시원하고 상쾌하다.  바라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 때문이다."

 

  "오후 1시가 되자 시간표에 의해 동안거冬安居의 첫 입선入禪을

알리는 죽비소리가 큰 방을 울렸다.  각기 벽을 향해 결가부좌를 취

했다.  고요했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이 삼동에 견성하겠다

는 소이에서일까. 그 외양은 문자 그대로 면벽불面壁佛처럼 미동도

없다.  그러나 그 내양은 어떠할까.  인간의 복수심과 승리욕은 밖에

서보다 자기 안에서 더욱 가증스럽고 잔혹하다."

 

 매우 솔직담백하면서도 구도자의 깊은 사색과 예리한 성찰이 돋

보이는 수행일기를 읽고 나니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내면을 흔들어

깨우는 느낌이다.  꼭 불자가 아니라도 이 책을 새겨 읽고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의 도량에서 청정한 눈빛을 잃지 않도록 매일의 '선방일

기'를 써보면 어떨까.

 

 

 

                        <153쪽 ~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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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해인글방*

 

 

            작업실이란 이름이 딱딱하다며

친구 수녀들이 붙여준 이름.   '해인글방'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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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자고 일어난

늘 깨어나는

어둠이 나를 반겨주는

나만의 소중하고 귀한 시간

깊어가는

가을

조요하던

우리네 삶에

어제 오후 부터

평화가 깨지는

우울한 소식에

대한민국

모든 이들이

잠못 이룬 밤이었으리라

 

그래도

잘 자고 일어났다

 

삶이란

한치앞도

모르는 것이다

 

 

 

부디

더 이상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바란다

 

 

 

 

2010년 11월 24일

 

 

 

철없는 농부의 아내

 

 

출처 : 민들레의 영토
글쓴이 : 나무와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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