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님의 詩

[스크랩] 가을 숙제 (29)

한조각뜬구름 2011. 12. 17. 15:46

                             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명상의 창>

 

 

어머니의 노래

 

 

  어린시절 나는 할아버지가 시조를 읊는 창 唱과 언니 오빠

노래는 종종 들었어도 어머니의 노래를 들은 기억은 거의

없다.  하긴 아버지가 납북되시고 우리 4남매 뒷바라지하느

라 고생하던 어머니가 언제 한번 마음놓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그런 어머니가 어쩌다 가족 모임에서 노래할 차례가 오면

수줍은 듯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으니, 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곡에 이난영이 노래한 <진달래 시첩>이다.

 

  '진달래 바람에 봄치마 휘날리더라 / 저 고개 넘어간 파

랑마차 / 소식을 싣고서 언제 오나 / 그날이 그리워 오늘도

길을 걸어 / 노래를 부르느니 노래를 불러 / 앉아도 새가 울

고 서도 새 울어 / 맹세를 두고 간 봄날의 길은 멀다~~' 어

머니는 끝구절 '길은 멀다~~'에 유독 애절한 감정을 실으시

곤 했다.

 

  한 여성으로서 자식들 낳고 가정을 꾸려 가장 재미있게

살 만하던 30대 후반, 돌이켜보면 이 노래는 그런 나이에 홀

연 행방불명된 남편을 기약 없이 기다리면서 고단한 현실과

씨름해야 했던 어머니의 절절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세월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팔순 기념 문집>>에서 당신은 이렇게 고백하신 적이 있

다.  "참 이상하게도 허덕허덕 살던 시절보다 남 부러울 게

없이 된 지금에 와서 아이들 아버지 생각이 더 간절해지니

웬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에 있는 재봉

틀을 매만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리도 기다리던 아들(이

인구) 낳은 기념으로 그분이 사준 재봉틀이지요.  그 애 나이

와 동갑이니 반백 변도 넘은 건데 바느질이 이렇게 잘될 수

가 없습니다.  이 재봉틀이 내겐 둘도 없는 소중한 재산입니

다.  그분은 정이 많고 자상했습니다.  제발 생사 여부나 알면

좋으련만......."

 

  님의 소식을 싣고 오는 파랑마차는 끝내 나타자지 않았

다.  그리고 53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어머니는 구순 노인

답지 않은 소녀 같은 목소리로 <진달래 시첩>을 부른다. 그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이난영 못지 않게 곱고 간드

러진 음성으로 노래하는 당신을 보면서 나는 평소 감정 표

현을 많이 안하시는 분답지 않다고 여겨 속으로 놀라기도

했다.

 

  이 글을 쓰면서 노래 가사를 확인하려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앞부분은 아니까 뒷부분만 불러달라고 해도 어머니

는 "노래를 해야 생각이 나지" 하며 1.2.3절을 적당히 섞

어가며 되풀이 부르셨다.  난 몇 번이나 되감기, 빨리가기 작

업을 하며 한참 웃었다.

 

  다음번 서울 가면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는 성가 <거룩한

어머니>와 <진달래 시첩>을 꼭 녹음해와야지, 나는 어느새

어머니의 낭랑하고 구성진 창법 그대로 <진달래 시첩>을 흥

얼거리고 있다.

 

 

 

 

                           <148쪽 ~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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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네번째 월요일 밤이 깊어가고 있다

 

음력으론

10월17일

 

휘엉청 둥근달이 보고픈 엄마 얼굴 처럼 선명하게

비추어 주는 밤이다

 

아직 음력으로 가을 끝이기에

부지런히

가을 숙제를

해본다

 

 

내일은

기쁨의 창

마지막 창인

독서의 창을

읽으면 된다

 

 

 

 

2010년 11월22일

 

 

철없는 농부의 아내

 

 

 

 

출처 : 민들레의 영토
글쓴이 : 나무와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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