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가을 숙제 (27)
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명상의 창>
+++신발을 신는 것은++++
신발을 신는 것은
삶을 신는 것이겠지
나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건너간 내 친구는
얼마나 신발이 신고 싶을까
살아서 다시 신는 나의 신발은
오늘도 희망을 재촉한다
--시 <신발의 이름>에서
얼마 전 신발장을 정리하다 떠오른 시다. 오래 잊고 있던
낡은 구두 한 켤레를 신발주머니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
웠는지, 신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인님, 그간 어찌 나
를 잊고 계셨어요' 하는 것만 같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신발을 신을 적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새롭다. 특히 신발을 잃어버려 안타까워하는 꿈을
꾼 다음날은 더욱 그러하다. 같은 층 수녀들의 방 앞에 놓인
신발의 종류만 보고도 '오늘은 집에 있군' '오늘은 외출을
했군' 하고 가늠해보곤 한다.
여러 해 전 늘 식당 옆자리에 앉던 젊은 수녀가 암으로 투
병하다 세상을 떠난 날 나는 그이 방에 들어가 주인 잃은 신
발을 들고 섧게 울었다. '까만 구두엔 이승을 걸어 나가 발
의 그림자'라는 표현이 절로 떠올랐다.
가톨릭에서 11월은 '위령성월'이라 하여 죽은 이를 특별
히 기억하며 기도하고 우리 자신의 죽음도 미리 묵상해보는
시간을 자주 갖도록 권유한다. 나는 오늘도 낙엽이 흩어진
수녀원 묘지에 올라가 성수를 뿌리며 기도했다.
바람 속에 가는비가 내리고 있었고, 숲에서 새들이 지저
귀는 소리가 오늘은 평화로운 레퀴엠처럼 들렸다. "수녀님
발은 초등학생처럼 작네" 라고 놀리던 동료의 목소리도 들
리고 "나 죽거든 내 신발 가져"라며 웃던 선배 수녀님도 문
득 그립다.
이제 다시는 신발을 신을 수 없는 그이들이 땅속에 누워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날마다 새롭게 감사하며 사에요" "더 기쁘게 걸어가세
요"라고.
<135쪽~~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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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우리는 곧잘 옷과 신발을 주일용, 평일용으로 구분하는데,
이것은 주일에 사용하는 겨울구두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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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 있습니까?+++
__성탄절을 앞두고
부산 날씨는 비교적 포근한 편인데도 몸과 마음은 으슬으
슬 추워서 꼭 몸살이라도 날 것 같아, 이른 아침부터 창가에
서 짹짹대는 새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너도 알지? 요즘
우리 모두 힘들어한다는 걸....... 우리 대신 명랑한 노래를
더 많이 불러주겠니?"
신문을 열면 온통 우울한 소식들이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기쁜 일보다는 슬프고 괴로운 일이 더 많습니다. 해마다 이
맘 때면 새 달력을 들고 들뜬 표정으로 인사를 다니던 손님
들을 거의 볼 수 없다는 택시기사의 탄식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어도 한숨만 나온다는 친지들의 고백에서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라면값이라도 달라고
손을 내미는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이들을 생각하면 작지만 편한 나의 잠자리가 매우 미
안하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여기저기 외롭게 기웃거리며 "빈 방 있습니까?"라고 외치
던 그 옛날 성 요셉의 모습이 바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
로 사랑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는
지요. 이웃을 외면하는 옹졸한 편견과 인색함으로 있는 방
도 없게 만드는 것 또한 오늘의 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우리 수녀원에서 이웃을 초대했습
니다. 아기예수를 기다리는 기쁨을 촛불춤으로 표현하고,
시와 동화를 읽고, 성가를 부르며 한결 온유한 마음이 된 우
리는 이웃사랑을 실천한 이들의 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친구를 마중하러 역에 나갔다가 얇은 셔츠 차림으로 떨고
있는 노숙자에게 자신의 점퍼를 벗어준 뒤 매일 새벽 1시에
서 4시 사이에 부산역 근처 노숙자에게 컵라면을 끓여주
는 어느 간호사 이야기,
단속반원과 승강이를 벌이던 한 장
애인 노점상에게 말없이 다가가 땅에 떨어진 빵과 음료수를
사주자 이를 구경하던 이들까지 힘을 모아 그 장애인의 물
건을 다 팔아주게 됐다는 어느 중년신사 이야기,
구걸로 생
계를 꾸리던 어떤 어머니가 1,000원짜리는 생계비로 500원
짜리는 아들의 눈 수술비로 그리고 100원짜리는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기로 하고 저축했다면서 100원짜리 동전
1,006개를 복지시설에 들고 온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우리 마
음이 밝아졌고, 여기저기서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기
도는 우리에게 다시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힘든 가운
데도 세상이 아직 살 만한 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지
닌 보통 사람들이 많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정 사랑에 대해서 말만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묵묵
히 실천하는 사람이 간절히 그리운 성탄절, 돈으로 포장된
선물보다는 마음이 깃들인 선물이 더 그리운 성탄절입니다.
자기희생과 절제로 숨겨둔 침묵의 향기가 없다면 이젠 봉사
라는 단어조차 듣기가 거북합니다.
나도 사랑이 부족해서
많이 흘린 참회의 눈물을 모아 아기예수가 누우실 구유 위
에 작은 예물로 얹어드리겠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그분의 영원한 사랑에 새롭게 감격하며, 핑계 대지 않고 작
은 몫이라도 이웃을 위한 사랑의 빈 방을 만들겠다는 약속
의 등불도 걸어두겠습니다.
초록색, 붉은색 리본으로 솔방울을 엮어 방문에 걸어두고
창밖을 보니 소나무숲 전체가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며 아
기예수를 기다리고 찬미하는 것 같습니다. "빈 방 있습니
까?" 문득 마음을 흔드는 겨울 바람 속에 환청인 듯 다시 들
려오는 애절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렇게 기도해봅니다.
손님 아닌 주인으로 당신을 맞을 마음의 방에
어서 불을 켜게 하소서.
돌처럼 딱딱한 마음 대신
아기의 살결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당신을 보게 하시고
욕심으로 번쩍이는 어른 옷 대신
티없이 천진한 아기 옷을 입고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주의 말은 찬미의 말로 바뀌고
불평의 말은 감사의 말로 바뀌게 하소서.
절망은 일치와 평화의 옷을 입으며
하찮고 진부하게 느껴지던 일상사가
아름답고 새로운 노래로 피어나게 하소서.
<138쪽~~~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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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늦은 오후
2010년 11월 20일
철없는 농부의 아내
윤
주
김천 장날입니다
김장 준비하는
아즈메 엄니들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