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님의 詩

[스크랩] 가을 숙제 (10)

한조각뜬구름 2011. 12. 11. 12:57

                                                   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詩(시)의 창>

 

 

 

생일을 만들어요, 우리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한 날

첫 꿈을 이룬 날

기도하는 마음으로 희망의 꽃삽을 든 날은

언제나 생일이지요

 

어둠에서 빛으로 건너간 날

절망에서 희망으로 거듭난 날

오해를 이해로 바꾼 날

미움을 용서로 바꾼 날

눈물 속에서도 다시 한번 사랑을 시작한 날은

언제나 생일이지요

 

아직 빛이 있는 동안에

우리 더 많은 생일을 만들어요

축하할 일을 많이 만들어요

 

기쁘게 더 기쁘게

가까이 더 가까이

서로를 바라보고 섬세하게 읽어주는

책이 되어요

 

마침내는 사랑 안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선물이 되어요

늘 새로운 시작이 되고

희망이 되어요, 서로에게ㅡ

 

   

          <64쪽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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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구하는 기도

 

 

오늘 하루도

지혜 한 톨 주십사고

기도드립니다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할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진리의 길에서도

헤맬 적이 많습니다

 

하얀 눈꽃을 닮은

지혜 한 톨 받아

열심히 가꾸고 키우다 보면

마음의 눈이 밝아질까요

 

남에게 슬픔을 안기지 않는

따뜻하고도 지혜로운 사람이

진정 될 수 있는 걸까요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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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애 많이 안 쓰고도

온전히 침묵할 수 있는

겨울나무는 좋겠다

 

우리가 말을 하다 보면

말을 잘못 한 사람도

잘못 전한 사람도

잘못 들은 사람도

모두가 슬퍼서 울게 된다

 

겨울엔

한 가지 소원만

되풀이해도 좋으리

가슴 깊은 곳에

침묵의 눈꽃을 품게 해달라고

말의 열매는

더디 열리게 해달라고ㅡ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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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엽서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잘 익은 셕류를 쪼개 드릴게요

좋아한다는 말 대신

탄탄한 단감 하나 드리고

기도한다는 말 대신

탱자의 향기를 드릴게요

푸른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붉은 단풍에 물들어

더욱 따뜻해진 내 마음

우표 없이 부칠 테니

알아서 가져가실래요

서먹했던 이들끼리도

정다운 벗이 될 것만 같은

눈부시게 고운 10월 어느날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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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바람이 지나가다

내 마음의 창문을

살짝 흔드는 가을길

탱자, 시냇물, 어머니

 

그리운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잠시 멈추어 선 가을길

 

푸른 하늘을 안으면

나의 사랑이 넓어지고

겸손한 땅을 밟으면

나의 꿈이 단단해져요

 

이제 내 마음에도

서늘한 길 하나 낼 거예요

쓸쓸한 사람들을 잘 돌보는

나무 한 그루 키우려고......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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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아주 먼 옛날

 (삼십년전)

  여고시절

 

책받침이나

연습장에 적어 놓고

 늘 보았던

 

푸시킨의 시

 

문득 떠오르는

 

시월

세번째 토요일

 

늘 눈떠지는

이른 고요한

새벽

입니다

 

 

 

 

 

2010년 10월16일

 

 

철없는 농부의 아내

 

 

 

 

 

 

출처 : 민들레의 영토
글쓴이 : 나무와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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