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여울님의음악사랑

[스크랩] 강허달림 "미안해요"의 재발견

한조각뜬구름 2011. 11. 19. 23:27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댔죠
    무슨 의미인지....
    차갑게 식어버린 말끝에
    단단히 굳어버린 몸짓에....
    환하게 웃음 짓던 얼굴
    쉼 없이 울리던 심장소리
    행복이란 작은 읊조림도
    내게는 너무 큰 세상이었던들....

    애써 감추며
    모르는 척 뒤돌아서서
    멍한 눈망울
    가슴저림도
    미칠 듯이 밀려오는 그리움에 헤어날 수 없어
    난 정말 안 되는거니....

    이미 시작된 엇갈림 속에
    다시 사랑은 멀어져 가고
    알면서 붙잡을 수 밖에 없었던 이 마음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강허달림은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그녀의 본명은 강경순이다.

시골소녀, 꿈을 꾸다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40분 정도 들어가야 나오는 시골마을.
그녀는 거기서 태어나 자랐다. 가난한 소작농의 집에서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모든 산천을 돌아다니면서 동네를 휩쓸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무엇보다 노래는 동네 콩쿠르에서 냄비는 다 탈 만큼잘했다.
그녀가 인생을 걸 목표를 잡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시골에서 접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아버지 환갑잔치 선물로 들어온 TV를 가질 수 있었다. 가요라는 것을 접해본 적이 없던 그녀는 이선희의 그대여, 잘못은 내게 있어요를 듣고 그대로 꽂혔다”. 그때 마음먹었다. 가수 해야지하고. 그렇게 마음먹은 후에는 한번도 그 꿈을 버린 적이 없다. 순천시에 있는 중학교에 올라가자  상황이 좀 달라졌다. 공부 잘하는 애들과 옷 잘 입는 애들이 수두룩했다. 그녀는 자연히 밀렸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언니는 3일 밤을 굶으며 시위를 해 결국 대학에 갔지만 바로 밑인 그녀는 중 3때 상고를 선택했다.   당시 어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난 대학을 가지 않고 돈을 벌겠어!라는 호기어린 선언을 했고 그녀는 그게 좋았다. 그녀가 진학한 상고에는 기타 중창반이 있어 잔뜩 기대했지만 기타를 못 사서 들어갈 수 없었다.   조금 후에야 4천원짜리 기타를 사서 물음표 음악학원에서 수강할 수 있었다.
마침 KBS 청소년 가요제가 열렸다.
그녀는 원장선생님을 한달 동안 따라다니며 조른 끝에 곡을 하나 받았고 녹음한 테이프를 서울로 보냈다. 3차 예선까지 통과, 본선 진출자 리스트에까지 올랐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떨어졌다. 그래도 그녀는 용기백배 했다. 난 서울로 갈 거야, 할 수 있어.’

“나, 서울 왔어! 다 죽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서울로 상경했다.
노래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달랑 배낭하나 매고. 서울에 와서 직원 다섯 명인 장판 회사에 경리로 취직했다.   당시 월급은 30만원. 그녀의 계획은 이랬다. 24만원씩 3년 동안 적금을 부으면 천만원 정도가 모인다. 그렇게 3년만 버티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꿈은 단박에 물거품이 됐다. 회사가 작다 보니 사장의 권력이 막강했고 갓 상경해 나, 서울 왔어! 다 죽었어!하며 의욕 충만했던 그녀는 당돌하게도 왜 함부로 하세요?” 미스 강 말고 경순씨라고 불러주세요하며 꼼꼼하게도(?) 따졌던 것이다. 결국 2개월 만에 잘렸다.

고졸 학력이었지만 그녀는 생각했다.
대학은 안 다녔지만 그 사람들보다 더 유식하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주눅들지 않기 위해 다짐했고 자신했다.   그런데 녹록치 않은 서울 생활, 돈을 벌려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현실인식이 앞섰다. 2년 동안의 재수생활, 음악을 공부할 수 있다는 서울예전이 목표였다. 거기 가면 음악 공부도 하고 음악 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다른 전문대 건축과에 합격했지만 재수하는 2년 동안 신문배달로 모은 90만원으로는 등록금이 모자랐다. 결국 포기하고 그때 막 생긴 서울 재즈아카데미 보컬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음악인생이 시작됐다. 스물 여섯이었다.

자신감을 얻다

음악을 제대로 접한 적도 없고
악보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주산만 튕기던 그녀에게 아카데미 생활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난 뜰 거야!하고 자신했던 그녀의 패기는 점차 무너졌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음악이 아니야 라는 혼란에 괴로웠다.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동기들 사이에서 창 발성이 남아있던 그녀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된 심정이었다.   동기들은 판소리만 하고 있는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저 애는 무슨 국악을 한대니?하고 수근거렸다.
그리고 96년 12월 28일’.
그녀는 그 날짜를 잊지 못하고 있다. 가수 한영애씨의 특강. 그녀는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웠다. 우리나라 소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냐?며 강의를 시작한 한영애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다. 자기 본연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자기만의 소리를 찾는 것이 보컬이다라고 말했다. 아카데미 1년 과정이 끝날 때까지 무대 한번 올라간 본 적이 없는 촌년에게 그 조언은 가슴깊이 각인됐다.
그리고 다시 재등록했다.
  아카데미 청소부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 당시 그녀는 그저 청소부였을 뿐이다. 아무도 노래로 그녀를 기억하지 않았다. 동기생들이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을 흉내낼 때 그녀는 판소리를 하면서 발성연습에 그러던 중 보컬 리뷰라는 수업이 있었다. 첫 무대였던 셈이다. 지금껏 수업 중 자기 색깔로 느낌 있게 부르는 사람은 처음이다.”
이것이 그녀의 무대를 본 강사의 평가였다.
반응은, 너무나 좋았다. 청소부였을 뿐인 그녀는 노래로 다시 평가 받았고 자신감을 얻었다.

블루스, 내가 찾은 음악

 

그녀는 올해 3월, 그룹 신촌 블루스 보컬로 영입됐다.
그녀는 그저 내 나름대로 노래를 한 것이었을 뿐,
블루스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가 느낀 블루스의 매력은 이것이 블루스다 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FONT face=바탕>그저 좋아하고 즐긴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블루스를 접하고 즐겼던 것처럼, 관객들도 그저 즐겼다. 글도 못 읽고 악보도 못 보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음악, 리듬만이 존재하는 블루스는 어쩌면 그녀에게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현학적으로 따지지 않고 자기 멋대로 즐기고 빠지는 것. 그녀는 이태원 클럽 just blues를 시작으로 무대를 휘저었고 클럽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뒤 그저 노래 시켜준다고 해서 들어간 것이 페미니스트 타이틀을 건 마고 밴드였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조차 생경했던 그녀에게 마고 밴드는 익숙치 않았다. 그녀는 운동권 음악이 시시했다”. 각종 여성단체 행사에 불려 다녔지만 음악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밴드니까 써주는 것 같았다.” 만족할 수 없어 결국 밴드에서 나왔지만 중요한 걸 건졌다. 엄마성. 시골 깡촌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에게 부모성 함께 쓰기라는 발상은 충격적이었다.

“내 모든 사상은 엄마”

그녀는 페미니즘은 몰라도 엄마의 삶은 알았다.
소리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궁핍한 생활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엄마는 시골 소작농의 아내로 6형제를 낳고 키우고 집안을 건사했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막내인 그녀를 늘 지지해주고 묵묵히 믿어줬던 엄마. 엄마의 삶 자체가 그녀를 구성했다. 엄마의 성, 허씨. 그녀는 엄마성을 자기 이름에 달고 싶었다. 그리고 달리고 싶다 는 의미의 달림. 강허달림. 그녀가 새롭게 찾은 이름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좀 이상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엄마성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같이 음악을 할 수 없다고도 했고 무작정 싫어하기도 했다.

그녀의 본명은 강경순이다.
공경할 경’, 순할 순’. 그녀는 순할 순 자가 싫다고 했다. 서울에 와서  순하게만 살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시골 촌년에게 사람들은 좀처럼 문을 열지 않았다. 아니, 자신도 문을 열수 없었다. 신촌의 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때 그 곳 사람들은 누구나 이즘 이니 사조를 이야기했고 몇 학번이냐?고 물었다. 음악을 사랑하고 영화를 좋아했던 그녀지만 좀처럼 입을 열수 없었다. 압구정에 있는 클럽에서 공연할 때는 지하철 문만 열려도 그 낯설고 불편한 공기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무작정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마음을 여는 그녀는 푼수였을 뿐이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 서울에서는 쉽지 않았다.
서울 생활에 지친 그녀는 한달 동안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지켜봐 주었다.   몰래 돈을 쥐어주며 시내에 나갔다 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안달하지 말자. 내 방식으로만 다가가 문을 열어 달라고 하지 말자. 그들 방식을 존중하고 지켜봐 주자고. 오랜만에 복작대는 식구들 사이에서 추석을 보내면서 그녀는 힘을 얻었고, 다시금 자신을 바라보았다.
서울생활 10년,
이제는 본연의 자신을 찾겠다면서 그녀는 농담처럼 말했다.
“그래, 나 촌년이야!”


*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댔죠 무슨 의미인지]
연인들은 상대가 싫어지면 이유를 찾아낸다 가급적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있는 단어를 찾느라 골몰한다
그래야 내게 돌아오는 비난이나 자책감을 벗어날 수있기에..
연인의 눈썹의 움직임과 입술의 오무린 각도조차 언어로 이해되던 이들에게
갑자기 찾아온 바벨탑의 무리들의 혼돈처럼 단 둘이 있는 공간에서도
서로의 언어가 부딛쳐오는 콱 막혀버리는 벽을 느낀다..
때론 이 벽은 세월과 함께 진화되어 유리로 그러나 아주 강한 통유리로 만들어져 입 벌리고 대쉬했단 코뼈만 부러진다..
그녀는 갑자기 알 수없는 언어를 읖조리는 누군가에게 당혹한다..< 내 사랑아...이해가 안가요..무슨 의미인지...>

[차갑게 식어버린 말끝에 단단히 굳어버린 몸짓에]
사랑이 식으면 우선 온도가 내려간다 .코드를 빼버린 가전제품처럼 온도가 내려가면 물체는 단단해진다.
동토에서 얼어버린 오징어처럼 돌처럼 단단해져 어떤 것으로도 깰 수없다
얼마전까지 활어처럼 싱싱 하던 그는 말까지 식어있었다..
면회소를 드나드는 보초처럼 어색하고 단단한 몸짓
그들에게는 이미 널려진  흔적들을 서둘러 치우려는 아주  어색한 용무 외에는 어떤 <볼 일>도 없어진 것이다

[환하게 웃음 짓던 얼굴  쉼 없이 울리던 심장소리]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거늘 그를 마주 대하는 상태는 어떠할까?.
기쁨은 그대로 명도를 가름하여 환하다. 그리고 환하게 하는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즉 우리의 인생에 구원이라는 단어와 동의어인 빛을 주는 것이다..
단 그것의 근원이 나의 깊은 내면의 욕망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상대에 대한 무한애정의 동인인지는 구분이 쉽지않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현상은 즉 환한 마음과 밝은 미래의 구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심작박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는 기쁨을 적응할 신체적 준비를 하는 것이다 ..
예측 못할 연인의 세레모니로  인해 사막같은 삶의 길모퉁이에서 만나게될 기쁨은 충격의 일종이기에..

[행복이란 작은 읊조림도  내게는 너무 큰 세상이었던듯]
행복하다고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 처음 맛보는 황홀경에 이것이 행복일거야라고 스스로 믿는다.
내게 다가온 이 행복이 이상하게 어색하다.
슬픔 속에서 만난 행복의 구원과 위안은 알 수없는 두려움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다
내게 온 행복이 오래 계속될까?..누군가 다시 찾아가거나 아니면 질투해서 빼앗아가지 않을까?..
그녀는 운명의 신 앞에 한없이 겸손하여 이 행복이 저주받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그 작은 소리조차 자신에게는 사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그녀의 작은 몸짓에 비해 너무 큰 세상이었고 너무 큰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애써 감추며 모르는 척 뒤돌아서서 멍한 눈망울 가슴저림도]
애써 감추려고 억지로 웃으며 얼굴을 돌렸다 .
아픈 마음으로 입술을 잘근 잘근 깨물면서도 시선은 허공을 향해 꽂으며 마음을 감추려했다..
그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있는 마지막 사랑이었고 마음이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죄라면 갚아야 할 속죄였다
그렇게 억지로 뒤돌아서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지만 보이는 것은 허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희뿌연 매연 사이로 매캐하게 다가오는 도시의 공해 그리고 인간의 더러운 욕망과 배신 그 비린내였고
그녀는 이 차가운 도로위에 내버려져 있었고 그녀의 눈물은 액체가 아니라 이미 끈적이는 검은 타르였던 것이다..
이내 가슴이 저려왔다..한낮의 태양의 열기 위에 다리가 후들거려 오고 현기증에 주저앉아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을 가르는 수많은 아픔들을 혼자서 견뎌내야만 했다..
왜?..그리웠기 때문이다..그리움이란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음이 있고 그로 인해 난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내가 필요했고 내게는 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경제용어로 대체재가 혀용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칠 듯이 밀려오는 그리움에 헤어날 수 없어 난 정말 안 되는거니]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알 수없는 이야기로 이별을
<통보> 받은 그녀는 너무나 순수하게 사랑했기에 <혼돈>의 상태에 빠졌다.
그러다가 <체념>과 <인정>의 < 사랑이라거나 행복이라는 것이 못난 내게는 너무 사치스러운 것들인가?..>라고 하며
내가 이해할 수없는 이유로 날 버린  그를 <용서>를 하기 위해 눈물을 참으며 뒤돌아서서 잊으려하나 <진통>의 상태가 찾아왔다
일상생활을 할 수없을 정도로 그리움의 장막이 그녀를 드리운다..아주 오랫동안..
정신적 공황상태에 이르며 그녀는 혼자서 절규한다..난 정말 안되겠니?.<좌절>
대개의 경우 죽음이나 난치병과 같은 인생의 중대한 고통을 맞닥뜨린 사람들에겐
좌절 분노 그후 용서와 체념 인정 이런 순서로 마음이 준비되어간다
그러나 상대가 사람일 경우 이 순서는 복잡하고 혼재된 상태로 다가온다.
상대가 나와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나의 마음도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미련을 떨쳐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된 엇갈림 속에 다시 사랑은 멀어져 가고]
그러나 엇갈림은 누가 원인이 되었는지 모르는 채 이미 시작되었고 오래 지나쳐왔다
다시 돌아간다는 것도 어색할 수밖에 없는 상태
여기서 사랑은 멀어져간다는 고백 앞에  [다시]라는 의미는 무얼까?..
수없이 다가왔다 멀어져가는 과정을 반복했다는 의미인가?...

[알면서 붙잡을 수 밖에 없었던 이 마음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렇다. 알면서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안하다
미안한 짓인 줄 알면서 붙잡았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내겐 죽음의 의미로 다가온 너와의 이별앞에서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너를 붙잡고 애원했다
그토록 너의 진심을 더 깊이 알았기에 지금은 그만큼 더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몰라서 잡은 것이 정말 아니었다..내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다..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다..
나도 이런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너를 놓아주기가 너무 힘들었다..그래서 더욱 미안하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야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단지 그말 뿐이다..정말 미안하다...
우리네 여인들의 정서와 닿아있는 이 이별가는 진달래의 소월의 노래처럼
진달래꽃을 뿌리는 마음으로 미안해라는 노래를 허공에 날리운다.
정작 그녀는 무엇을 미안해해야하는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그는 먼 길을 떠나야만 했고 그녀는 그를 붙잡아 그가 떠날 시간을 지체하고 마음을 산란하게 했던
사실 밖에 그녀가 알 수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고백하는 대상은 떠나버린 그가 아니라 그녀가 어쩌면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자책감으로 인해
[사랑]이라는 이름의 그 무엇에 대한 용서일지도 모른다
천상의 사랑을 잘 간직하지 못해 이렇게 길바닥에 나뒹굴게 한 것에 대한..
그러나 그녀의 용서의 대상은 어쩌면 자신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어떤 실체앞에 무대의 막이 내린 후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삶의 제단 앞에 눈물 떨구고 있는 소복입은 여인이되어..모든 것에 대한 미안함이다..
그녀는 한스럽지 않다..가버린 사람에게 저주스럽지도 가련하게 매달리지도 청승맞지도 않다.
그녀가 부르는 이 노래야말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미안함의 최고 절정이다.
 
♪ 미안해요 .. 강허달림 ♪
출처 : 산여울의 음악사랑
글쓴이 : 산 여 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