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수덕사
선(禪)의 중흥도량 수덕사 (修德寺)
수덕사(修德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서,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德崇山)에 자리한다. 운수납자(雲水衲子:구름과 물처럼 수행처를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스님) 들의 수행정진터, 대한불교조계종 5대총림(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의 한 곳이다.
수덕사의 산내암자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선원인 견성암을 비롯하여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선풍을 휘날리던 정혜사와 금선대 등이 있다. 벽초 경선(碧超 鏡禪)· 원담 진성(圓潭 眞性)스님 등이 방장으로 주석하면서 수선도량으로서의 면모를 이어오고 있다.
일주문(一柱門)
금강문 - 수덕사 수좌인 설정스님의 글씨이다. 금강은 불탑및 사찰의 양쪽을 지키는 수문장역할을 하는 존재로 인왕역사라고도 한다.
보현동자 - 부처님의 실천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코끼리를 타고 있다.
문수동자 -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동자가 사자를 타고 있다.(벽화로 모심)
천왕문(天王門)
금강문과 나라연금강, 밀적금강입니다.
덕숭총림
맞배지붕에 주심포(柱心包) 형식을 한 이 건물은 주두(柱頭) 밑에 헛 첨차(첨遮)를 두고 주두와 소로(小累)는 굽받침이 있으며, 첨차 끝은 쇠서형(牛舌形)으로 아름답게 곡선을 두어 장식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측면에서 보아 도리(道里)와 도리 사이에 우미량(牛尾樑)을 연결하여 아름다운 가구를 보이고 있다.
금강보탑
성역화 중창불사 도중 전탑 좌대가 현 위치에서 발견되어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탑을 세우고 금강보탑이라고 칭하였다. 금강이란 불괴신의 불(佛). 법(法). 승(僧) 삼보와 계체의 상징으로 이름하게 되었으니 신앙의 대상이다. 이 탑 내부에는 1988년 덕숭총림방장원담대선사께서 스리랑카를 종정스님으로부터 한. 스간의 우의를 견고히 하는 뜻으로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증정하므로 10수년간 친견법회를 거쳐 본 탑에 봉안하게 되었으며 불상 1,000불과 탑 모형을 동으로 주조하여 999탑을 소장하기에 이르렀으니 천불석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탑에는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는 물론 청풍납자 속성정각하여 광도중생하고 박복자 복덕구족하여 고통받는 이 모두는 이고득락(離苦得樂)할 것을 발원하면서 2000년 7월에 세우다.
성역화 중창불사 도중 전탑 좌대가 현 위치에서 발견되어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탑을 세우고 금강보탑이라고 칭하였다. 금강이란 불괴신의 불(佛). 법(法). 승(僧) 삼보와 계체의 상징으로 이름하게 되었으니 신앙의 대상이다. 이 탑 내부에는 1988년 덕숭총림방장원담대선사께서 스리랑카를 종정스님으로부터 한. 스간의 우의를 견고히 하는 뜻으로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증정하므로 10수년간 친견법회를 거쳐 본 탑에 봉안하게 되었으며 불상 1,000불과 탑 모형을 동으로 주조하여 999탑을 소장하기에 이르렀으니 천불석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탑에는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는 물론 청풍납자 속성정각하여 광도중생하고 박복자 복덕구족하여 고통받는 이 모두는 이고득락(離苦得樂)할 것을 발원하면서 2000년 7월에 세우다.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때인 1308년에 세워진 것으로 건립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목조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불전의 규모는 전면에 널찍한 빗살문을 단 정면 3칸, 측면 4칸의 적지 않은 크기로 단출한 주심포계의 포작 위에 고깔을 씌워 놓은 것 같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이 불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건축물이며 단아한 조형미와 측면의 장식적 요소가 빼어나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 등과 함께 우리나라 건축사를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에 건물을 해체, 수리하면서 건립 연도를 기록한 대들보의 묵서와 건립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주악공양비천도(奏樂供養飛天圖), 수화도(水花圖), 야화도(野花圖), 금룡도(金龍圖) 등의 벽화가 발견되었다. 불전 안에는 보물 제1381호로 일괄 지정된 석가모니부처님을 본존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배치된 삼세불을 모시고 있는데, 본래 남원의 만행산 귀정사에 봉안되었던 것을 만공 스님이 이곳으로 이운해 온 것이라고 한다. _편집부
대웅전 현판. 수덕사 방장이었던 원담 큰스님의 글이다.
수덕사 방장이었던 원담 큰스님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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